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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l 08. 2021

특명, 성범죄자를 잡아라!

영화 <위왓치유, 2020> 리뷰


시작은 체코 통신사의 제안이었다.

통신사는 10대-20대 사이의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넷 사용 윤리에 대한 교육 영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비트 클루삭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실험 카메라 형식을 취하게 된다.


한국에 <위왓치유, We watch you, 우리는 너를 보고 있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개봉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코트 인 더 네트, Caught in the net, 그물에 잡히다>, 체코어 제목은 <씨지, V síti, 그물에서>이다. 여기에서 그물은 2458명이 12살 청소년을 낚아 자신의 아픈 몸을 낫게 해 달라며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가짜 계정으로 어른 배우를 섭외해 12살 청소년 연기를 시켜 2458명의 범죄 현장을 잡는 덫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은 '잡는 것'보다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잡아봐야 그다음의 과정이 영 마뜩잖을 것 같고, 잡히는 듯했다가 이내 빠져나가는 것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도 필요했을 것이다.


<위왓치유, 2020> 포스터

12살 청소년에게 접근해 온라인으로 성적 학대를 일삼는 가해자들은 일종의 공통된 공식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예쁘다는 말로 친밀감을 형성한다. 다음으로, 겉옷을 벗으라고 하거나 방 안을 돌아다니라는 가벼운 부탁을 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인내심을 갖고 꾸준하게 나체 사진을 요구한다. 이때에는 동정심 유발, 공포 분위기 조성, 관계 단절에 대한 죄책감 부여 등 여러 가지 전략이 번갈아가며 사용된다. 12살 청소년의 나체 사진을 어쩌다 하나 얻게 되면, 알뜰하게 다방면으로 사용한다. 나체 사진 하나만 있으면 다른 행동들은 조종이 무척 쉬워지기 때문에 약간의 수고로움은 기꺼이 감수한다.


비트 클루삭 감독의 전작 <체코드림, 2004>은 광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를 던져 체코 학교에서 미디어 수업 교재로 활용된다고 한다. <위왓치유, 2020> 역시 학교 수업 교재로 쓰일 수 있도록 토론 자료 및 부모 교육 가이드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체코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고, 국영방송에서도 송출된 바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언급조차 불가능하다.

<체코드림, 2004> 포스터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다면 EBS 다큐it <당신을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2020>을 추천한다. 제작진이 일주일 동안 미성년자로 설정한 계정으로 랜덤채팅을 하고, 그중 몇몇은 직접 만나 온라인 성학대를 하는 이유를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두 콘텐츠를 같이 감상하면 멀리 떨어진 체코와 한국이 문화적으로 상당한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BS 다큐it <당신을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랜덤채팅앱은 한국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어 미성년자 가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인증과정은 깜짝 놀랄 만큼 허술하다. 경기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이수정 교수는 채널A <요즘 가족 금쪽 수업>에서 어른들에게 랜덤채팅앱을 설치하고 들어가서 오는 메시지를 직접 보라고 가르쳤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접속하자마자 쏟아지는 메시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성년자'라는 상품이 등장하면 문의 글이 폭발하고,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상품을 아주 싼 가격에 차지하기 위하여 별짓을 다한다. 그것을 우리는 '범죄'라고 칭한다.


[스포] 1/2458, 영화에 인류애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가 있다. 확률로 계산해보니 약 0.000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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