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생의 종강기념 여행기 1탄
삐뚜로빼뚜로의 브런치 글이 지난 3주간 업로드되지 않았다.
우리는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구독자 수 또한 그리 많지 않아, 우리의 글을 기다리는 이가 많을 것같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 큰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우리는 4주넘게 회의도 안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지만,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필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보니, 다음과 같은 브런치팀의 압박이 알람으로 와 있었다.
“작가님, 혹시 글쓰기를 자꾸 미루게 되나요?”
네, 죄송합니다. 글은 안 쓰고 종강했다고 그 와중에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대학원생의 짠내나는 여행기를 글로 공유해볼까 합니다 :D
앞서, 우리가 4주 동안 회의도 못하고 3주째 새로운 글을 올리지 못하였다고 적었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미 눈치챈 이가 있겠으나, 우리는 약 2주 전에 종강을 하였고, 그말인즉 기말 과제에 영혼을 불태우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학교마다 전공마다 다르겠으나, 대개 인문학전공은 기말 과제로 소논문을 제출한다. 소논문은 서론-본론-결론의 틀을 갖추고, 이론을 토대로 자신의 논의를 구축해가는 10페이지 분량의 글이다. 물론 논문의 주제는 해당 과목에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선정해야 하므로, 수강한 과목의 수만큼의 전혀 다른 주제를 연구해야 한다. 필자는 여기에 더불어 학술지에 투고할 논문까지 쓰고 있었으므로 정말 정신없는 6월을 보내었다. 바빴다는 말을 참 정성스럽게도 하고 있다.
6월은 마치 나태지옥에 떨어진 것과 같았다. 끝도 없는 자료서치, 끝도 없는 공부, 끝도 없는 텍스트 분석, 끝도 없는 글쓰기. 이 고통 속에서 필자는 괴로움 없이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인 ‘극락세계’를 잠시 꿈꾸었다. 그러던 중 불현듯 풍경 좋은 절에서 명상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래 종강하면 절에 들어가자. 가서 내면의 평온을 되찾고 말것이야’라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7월1일.
드디어 나태지옥을 벗어나, 그리고 속세를 벗어나 삼화사로 떠난다. 나의 이너피스를 찾아서!
사실 필자에겐 이번이 첫 템플스테이였다. 템플스테이의 장소로 삼화사를 고른 것은 단순히 ‘경치가 매우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삼화사는 강원도 동해시의 무릉계곡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무릉계곡을 포함한 절 주변의 절경들은 앉아만 있어도 모든 번뇌를 사라지게 만든다.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무릉반석에는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방문한 유명인사들이 새긴 시와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모두 한자로 적혀있어 이 또한 자연풍경과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루지만, 예나 지금이나 관광지에 이름쓰는건 똑같다는 친구의 말에 약간 웃겨 보이기도 하였다.
어찌되었든, 이곳 풍경은 꽤나 절경이어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자주 사용된다고 하였다. 마침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사극 드라마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나름 속세를 피해 절에 들어왔는데 별로 속세와 분리되지 않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는 저녁 공양 후 타종 체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한 스님이 촬영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스님은 촬영 구경을 빙자하여 무릉계곡과 삼화사의 역사를 이야기해주시긴 하셨다.
스님과의 촬영 구경을 마치고, 범종각 앞에 서서 타종의 의미와 불교의 교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교리를 가르쳐주시는 스님(다른 분)께서는 상대방이 타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친구든, 가족이든, 그 누구든, 타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속으로 ‘우리 지도교수님이 여기에 와서 이 말을 들어야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우리 교수님은 언제나 ‘제자는 스승을 닮아야하니, 너도 나와 동일하게 생각하고 쓰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하...... 왜 나는 이곳에 와서도 지도교수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번뇌로 가득 찰 무렵, 타종 체험이 이어졌다. 저녁 타종은 33번 이루어지는데, 이 땅 위 모든 중생의 평안과 천계에 있는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치는 것이라 하였다. 종소리는 매우 웅장하였는데, 문득 이 종소리 때문에 무릉계곡에서의 촬영은 중단되지 않았을까하는 잡생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필자 또한 옛날옛적 영화 촬영을 다니던 시절, 소음으로 촬영이 중단되어 곤란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다시 문득, 종소리 덕분에 촬영팀도 잠시 휴식하게 된다면 이 또한 부처님의 자비인 것일까? 스님은 마음과 머리를 비우라고 하시는데, 나의 잡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있다. 템플스테이도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세에 있을 때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종 체험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내일 새벽예불은 참석안해도되니 아침 일출을 꼭 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저녁산행을 한 뒤 각자 책을 읽다 일찍 잠에 들었다.
일출을 보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하는데, 못일어날까 걱정하였던 나의 우려와는 달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계곡의 물줄기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끄러운 기계음이 아니라 그런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니 저 멀리서 동이 트고 있었다. 안개가 짙어 선명한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어 만족스러웠다. 이효리에 빙의해 커다란 바위 위에서 친구와 차를 마셨다. 아..... 이것이 극락이구나......... 처음 느껴보는 평온이었다.
속세(양양해변)로 내려간 필자의 여행기, 2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