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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ul 12. 2021

이너피스를 찾아서

: 대학원생의 종강기념 여행기 2탄

지난 여행기에 이어, 템플스테이에서 이너피스를 찾은 필자가 속세로 내려간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새벽 5시에 눈을 번쩍 뜨게 해준 삼화사 미라클 덕분에, 퇴실 시간인 11시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전날 산행에서 어두워지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던 쌍폭포까지의 등반을 시도했다. 2시간이나 걸렸음에도 시계는 아직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유롭고 건강한 하루의 시작. 이를 거뜬히 해낸 나 자신. 기특하다 기특해. 논문으로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존감이 조금은 회복되었다. 절에서의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보낸 우리는 드디어 속세로 내려간다. ‘술과 유흥 없이도 너무나 즐겁고 좋은 여행이다.’ 자화자찬하면서....     

절에서 내려가는 길에 찍은 사진. 몹시 신이나 있다.


아침 공양을 6시에 했기에, 오전 11시에 우리는 이미 허기를 느꼈다. 삼화사가 있는 동해를 떠나 강릉으로 넘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여행코스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던 우리는 가는 길에 강릉 맛집을 검색하여, 짬뽕 순두부로 유명한 ‘동화가든’을 픽하였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니까 사람 많이 없겠지? 사람 많으면 옆에 다른 집 가서 먹자. 이때까지도 속세의 상황을 몰랐던 우리는 사찰 음식과 달리 맵고 짠 짬뽕 국물 생각에 해맑게 웃었다.     


드디어 짬뽕 순두부집이 있는 지역에 도착한 우리는 벌써 피곤함을 느꼈다. 삼화사가 있는 두타산에는 분명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에 다 와계셨네? 심지어 그 지역에서 가장 핫한 식당인 ‘동화가든’에는 어마어마한 대기인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번호표를 부여받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우리 앞으로 100명쯤 있는 듯했다. 그냥 서서 기다리고 있기만은 시간도 아깝고 배도 고파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보았다. 카페인이라도 충전하고 있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카페에도 대기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우리는 어쩔수없이 다시 순두부집 마당으로 돌아왔다. 식당 직원분이 대기시간이 40분 정도라고 안내해주셨는데, 실제로는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친구는 참다못해 ‘진짜 입에 넣었는데, 한 시간짜리 아니면 아주 가만히 안있는다.’라며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른다. 우리 분명 마음의 여유를 찾았잖아 친구야.... 스님의 가르침을 벌써 잊은거니? 이렇게 우리의 이너피스는 절에서 내려온 지 한시간만에 와장창 깨진다.  

속세의 맛은 매콤하다. '동화가든'의 짬뽕순두부와 모두부.


그렇게 우리는 속세의 매콤함을 진하게 맛보고, 양양으로 향했다. 우리의 분노를 식혀줄 맥주와 바다가 필요해.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 하고 싶었던 우리는 양양의 핫플레이스인 ‘서피비치’로 갔다. ‘거기 지금 자리가 있으려나?’ 택시 아저씨의 한 마디에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이번에는 자리가 없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기로 합의하였다.      

이곳이 극락인가요? 공기...습도...온도... 모든 것이 완벽했던 '서피비치'의 입구


서피비치에 도착해서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하아....... 여기가 극락이네...........

스님 죄송해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속세 러버인가봐요......     


뜨거운 태양, 새하얀 모래, 새파란 하늘, 투명한 바다, 그리고 술과 음악.

너무나도 자유롭고 흥겨운 분위기의 이곳. 코로나로 인해 거의 2년 만에 만나는 바다이기에 그 벅참은 더욱 컸다. 우리는 빈백에 앉아 하염없이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코로나와 함께. (이때의 코로나는 코로나 맥주를 의미하기도 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 드넓은 바닷가였으나, 이곳 또한 맥주를 마시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함께라도 즐거웠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와 자유인가.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서울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알게 되었는데, 서피비치에서 찍은 사진에서 전부 잇몸미소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정말 행복했던 것 같다.       

코로나 천국인 '서피비치'의 전경과 우리가 먹은 코로나 맥주


사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필자가 앉아 맥주를 마시던 곳은 “SURFYY BEACH”라는 글자 조형물과 근거리에 있었다. 당연히 이곳은 모든 방문객이 인증샷을 찍는 포토존이다. 구글에 서피비치의 사진을 검색하면 이 글자 조형물의 이미지가 주르륵 뜰 것이다. 필자는 맥주를 마시며,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글자에 한 명씩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 가족부터 여자친구를 위해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남자들, 그리고 점잖게 포즈를 취하는 강아지까지. 이곳에 온 모두가 “SURFYY BEACH”라는 글자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나, 어젯밤 삼화사에서 읽은 『스펙타클의 사회』가 떠올랐다.    


기 드보르의 책 <스펙타클의 사회>와 서피비치의 포토존


『스펙타클의 사회』은 기 드보르가 1967년에 쓴 책으로, 그는 이 책을 통해 당시 서구사회를 ‘스펙타클의 사회’로 규정하였다. 스펙타클의 사회란 무엇인가? 스펙타클은 직접 경험하는 것과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것은 오로지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며, 좋은 것은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현대는 확실히 (…) 사실보다 이미지를, 원본보다 복사본을,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한다. (…) 현대에서 신성한 것은 오직 환상뿐이며 진리는 속된 것이다. 현대인의 눈에는 진리가 감소하고 환상이 증대하는 정도에 따라 신성함은 확장된다. 결국 현대에서 환상의 극치는 신성함의 극치가 된다.


-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 제2판 「서문」      


스펙타클 이전의 일차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물들과 직접적으로 교섭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매개 없이 직접 경험했던 모든 것은 표상 속으로 멀어진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두고 그 사건의 의미와 결과보다, 붕괴된 장벽이라는 그 표상적 이미지만을 중시하는 사회. 이것이 그가 말하는 스펙타클의 사회이다. 필자는 “SURFYY BEACH”라는 글자 조형물을 통해 서피비치라는 공간을, 그리고 자신이 서피비치에 왔다는 사건을 기록하려는 행위가, 스펙타클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느꼈다. 물론 필자 또한 여기서 인증샷을 찍었다. 필자는 전형적인 속세인이자, 전형적인 스펙타클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의 사회를 비판하였지만, 아마도 필자에겐 이 사진이 이후 날들을 버텨내는데에 소중한 이미지가 될 것 같다. 이 사진 한장에 담겨있는 이너피스의 추억을 가지고,  또다시 대학원생의 짠내나는 삶 속으로 돌아간다.


이너피스를 찾아 떠났던 종강기념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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