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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Oct 29. 2020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는 건 네가 아냐

가족이 이런 거라면, 난 결혼 안 할래 3

        

“여자애들이요.”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가르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학교에서 준비물 챙기는 게 어려워 잘 챙기는 친구의 특징을 물어보니 나온 답변이었다. 주변의 남자 친구들은 안 챙겨 오냐고 물어봤더니 대부분 안 챙겨 온다고 그랬다. 언제부터 여성과 남성은 다르게 자랐을까. 


내가 기억하고 가장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봤다. 나는 명절 때마다 8살 때부터 4명의 사촌 동생들을 ‘돌봤다’. 그러나 동갑 9개 월생 먼저인 사촌'오빠’는 사춘기가 되고서부터는 같이 ‘놀지’ 않고 혼자서 게임을 하고 누워있었다. 같은 학년임에도 오빠는 공부하기에 그날만은 쉬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동생들을 돌보고 방 뒷정리를 도맡아 하는 존재였다. 그래 놓고 절은 장손인 오빠와 내 사촌 남동생이 맨 앞에서 했고, 큰집에 가서 용돈을 따로 더 받았다. 주변 여성 친구들도 10대 때부터 명절에 전을 부쳤다. 내 친구는 명절에 20살인 여자 사촌 동생과 남자 사촌 동생이 오자마자 여동생은 두 팔을 걷고 뭘 도우면 되냐고 물었고, 남동생은 옷 벗고 소파에 앉아 게임을 했다고 열불을 냈다. 남성 친척들은 모이면 앉아서 주식과 직장 얘기, 정치, 주변 사람들의 성공담, 결혼 얘기를 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러나 여성 친척들은 부엌에서 무엇을 더 도울 수 있을지, 남은 일들은 무엇이 있는지 눈으로 보고 대화를 통해 착착 맞춰갔다. 남성들은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나, 여성들이 살피는 주변을 정작 보지는 못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 “눈에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게 할게” 같은 헌신적인 약속이 불가능한 이유다. 그 말의 의도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진부한 저 대사가 아니더라도 그만큼 잘하겠다는 절절한 말은 그 순간에 진심일 것이다. 관계적인 측면에 국한해 얘기하자면 연애할 때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신뢰를 쌓아온 관계였다면 그 말을 할 때 확신도 서 있을 터이다. 


안타깝게도 관계에서 더 잘하겠다는 말은 진심이더라도 결혼 후 관계는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둘이서 존중하며 연애했어도, 결혼은 둘이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혈연, 친구 관계 등 모든 관계와 이어지는 일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관계이고 그 안에서 남편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부부가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더라도 복잡한 관계망 안에 들어가면 사회적인 관습으로 둘 사이를 규정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아리따운 형수님 집들이 언제 하시나요? 음식 솜씨 한 번 보여주세요" 같은 말 앞에서 상대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까. 아내에겐 “새 아가가 살림을 야무지게 잘하네”를, 남편에겐 “홍길동 서방은 뭘 먹고 싶나”를 응원 삼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 팔다리 잡고 말리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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