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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06. 2022

핏줄을 빌미로 강제당하는 이해

가족이 이런 거라면, 난 결혼 안 할래 7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태어나서 단지 핏줄 하나로 원치도 않았던 수많은 관계가 생겼다. 십 년 만에 유명 로펌 변호사가 된 육촌을 본 건 그의 결혼식장에서였다. 그곳에서 핏줄 하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거의 모든 혈연관계가 와있었다.  


“여기는 네 오촌 아재다 인사해라. 아 저기는 방금 소개한 **아재 딸, ##대학교 대학원 다니고 있다고 하네.” 

말 중간마다 “아… 아?!”(우리는 가까운 사이였군요!)같이 깨닫는 리액션을 곁들어줘야 했다. 그들이 서량과 연이 있다지만 그들도 내가 어색해 보였다.   


꾸준히 명절마다 모여봤자 일 년에 여섯 시간 정도 보는 친척들은 어색하진 않았지만 무례하거나 무관심했다. 내 할아버지 기영이 몇째인지도 모르는데 기영의 형제, 남매, 그들의 ‘아들’들이 빼곡히 경애와 기영의 집에 들어찼다. 촌수도 모르는 할아버지와 아재들이 명절에 내게 물을 수 있는 안부 인사는 뻔했다. 날 훑어보며 “성적은 어떻게 되니?”, “저번 명절보다 키는 더 컸구나.” “숙녀가 다 됐구나.” 같은 상투적인 인사를 건넸다. 뻔한 질문 몇 개가 동나면 이야깃거리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기저귀 찬 때로 돌아갔다. 그들은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때를 기억한다는 걸 마치 큰 비밀이라도 아는 채 했다. 제일 끔찍했던 건 살을 빼기 전 그들이 소재가 떨어지면 장난을 가장하여 말하곤 했던 외모 평가였다. 


“야, 덩치 봐라. 나랑 맞먹겠는데?”


농담이랍시고 한 마디씩 했고 매번 서량은 딸 하나 관리 못하는 엄마가 됐다. 서량도 나도 살 때문에 죄인이 됐다. 서량의 노동과 내가 제기와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우고, 사촌 동생들을 돌보는 것들은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가끔 내게 시집가도 되겠다는 ‘칭찬’ 정도에서 노동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 그들의 아내들이 이 집안에 시집와서 “뭘 하면 될까요?” 하면서 말을 거는 방식을 배우진 못했다. 과연 그들이 ‘칭찬’한 그대로 그들의 아내들은 부엌에 들어가(야만 하)는 줄은 모르고. 


애비 쪽 친척들은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평생을 못 본 사람들이었다.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그들의 자식, 그리고 자식의 자식들과 밥을 먹었다. 한 끼를 시작으로 친가는 다시 나와 호정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비의 딸로, 조카로 연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석 달 후 평생 밥 한 끼 같이 먹은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상복을 입고 섰다. 장례식장 안에서 반찬을 나르고 열심히 모르는 혈연의 등을 보고 맞절을 해야 했다. 다시 반복됐다.


“여기는 네 오촌 아재다 인사해라. 그냥 삼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끝도 없는 내가 모르는 핏줄들. 

그로부터 삼 개월 뒤 호정이 죽었다. 애비의 형제, 남매는 호정의 죽음을 친할머니께 숨기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미 언니가 해외로 나갔다는 각본까지 준비했다. 통보였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간 지 얼마 안 됐는데 언니의 죽음까지 알면 친할머니가 너무 큰 충격을 가질 거라고 했다. 


다음 명절에 친가에 불려갔다. 호정이 오지 않은 아쉬움 때문인지 할머니는 언니의 앨범을 꺼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아 고개를 돌리는 내 손에 친할머니는 더 구경하라며 호정의 앨범을 쥐여줬다. 방으로 들어갔다. 


“앨범 천천히 보고 나오너라”

명절에 모여있던 누구도 내가 들어간 방문도 닫아주지 않았다. 모두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완벽하게 거짓말을 하기 위해 그 어떤 이도 내게 울 시간을 주지 않았다. 


친할머니는 얼굴을 비추지 않는 언니를 궁금해했다. 서량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몇 날 며칠 간격을 두고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언니와 나를 위해 기도한다 말하며 둘의 안부를 물었다. 


“인도에 갔어요. 거기서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고 마음 좀 편히 있다 오고 싶대요.” 


서량은 막히는 목소리를 끌어올리려고 연신 코를 풀어야 했다. 언제나 서량은 감기에 걸려있다는 작은 거짓말을 덧붙여야 했다.


가장 힘든 사람들에게 친척들은 책임지지 못하는 거짓말을 시켰다. 호정과 나를 못키워서 서량에게 떠넘기고 죽은 사람. 나와 연이 없었으면 하는 애비가 남긴 혈연은 지독했다. 서량과 이혼한 걸 알면서도 내가 있다는 이유로 지독히 얽히고자하는 혈연. 친척이라는 이름은 내게 너무 무거웠다. 태어나자 마자 가족이 된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들의 관계를 위해 행동해야 했다. 친척들은 계속 세상의 규격에 맞춰 나를 이해했다. 그들의 관계를 억지로라도 이해해야했다. 배 안에서부터 이해해야하는 쪽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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