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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07. 2022

맥시멀리스트 집에서 길러진 미니멀리스트

내 삶은 현재 진행형 1

“이거 뭐야? 버려도 돼?” 


서량의 옷장에서 입을 옷을 뒤지다 호피 패턴의 누빔 조끼 원피스를 발견했다. 서랍 구석에서 발굴된 팔 빼고 몸통만 따뜻해 보이는 기괴한 디자인의 원피스. 이걸 대체 어디에서, 왜 입는 걸까 생각하며 서량에게 보여주었다. 


“아니, 그게 얼마짜린데.”

“...? 그러니까, 이걸 왜 샀대. 처음 봐. 이거 엄마한테 작아 보이는데?”

“살 좀 빼면 입을 수 있다. 꼭 입을 거니까 저기 내놔라.”


하. 괜히 물어봤다. 이번에도 있었는지도 모르게 까마득히 잊은 물건들을 괜히 들춰내 버렸다. 다음에는 꼭 몰래 버려버려야지. 그와중에도 작아져 버린 옷을 나에게 떠넘기는 실랑이는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서량 집에는 물건을 사놓고도 둘 자리가 없어서, 혹은 귀찮아서 풀지 못 한 택배 상자가 쌓여있다.  몇 년 동안 쓴 걸 본 적이 없어 버릴 거냐고 물어보면 ‘언젠간’ 쓸 거라고, 이제 통하지 않자 ‘반드시’ 쓸 거라고 한다. 속옷과 양말을 위해 여덟 칸을 쓰는 사람. 곤도 마리에 정리법을 보고 서량에게 설레는 것만 가지고 있으랬더니 물어보는 족족 다 설렌단다.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서량은 감정의 디폴트가 설레는 상태인 건가? 아니면 서량의 설레는 기준이 매우 낮은 건가?

 

게다가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뭘 챙겨오곤 했다. 식당에서 사탕과 물티슈를 주워서 가방에 넣어놓고 집 이곳저곳에 흩뿌려뒀다. 집에는 온갖 사람과 단체의 기념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모아둔 색색깔의 수건들이 오십 장은 있었다. 옷을 버리려 하면 무조건 잠옷 혹은 행주 행이다. 잠옷과 행주 도합 오십 장을 또 채울 테다. 


보고 배운 게 서량의 라이프 스타일이니 익숙해질 법도 할 것 같지만,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펜트하우스 같이 꾸며놓은 집들 사진은 넘쳐나니까. 초등학생 3학년 때 이미 <집 분위기를 바꾸는 10가지 정리 노하우> 같은 포스트를 보고 청소를 ‘독학’했다. 


서량은 정리한 집을 보면 좋아했지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덕분에 분기마다 <실전,  청소 프로젝트>를 벌였다. 마침내는 서량의 이동 동선, 행동 습관을 파악하며 편하게 쓸 수 있는 정리함을 개발해내는 정리의 신이 되었다. 서량은 청소에 있어선 나의 반면교사였다. (물론 돌이켜보면 보고 배운 것, 하는 일들을 당연히 여겨 몰랐던 노동도 많았다.) 맥시멀리스트 집에서 미니멀리스트가 길러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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