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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08. 2022

엄마의 집을 떠나서

내 삶은 현재 진행형 2

“나 이렇게 더는 못 살겠어. 엄마랑 절대 못 살아.”


새끼발가락을 찧어 얼룩진 냄비 뚜껑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부엌으로 내놓으려던 반찬통들은 엎어져 버렸다. 교사인 서량이 수학여행 때문에 집을 비운 동안 고3이었던 나는 부엌에서 혼자 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 터질 게 터졌다. 그 사달이 난 모든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라고 당시에 생각했다). 집에 식품위생법이 적용됐다면 엄마는 영업정지(요리정지) 처분을 받았을 테다. 


정리를 해도 해도 더 더러워지는 집을 견딜 수 없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서 반드시 집을 떠나리라. 고등학생이 되고선 일부러 학교에 남아 공부했다. 더는 집을 건드리지 않았고, 청소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엄마의 공간이 될 집이었다. 집에 잘 들어가지 않으니 집이 더러워도 신경을 껐다. 그러나 그날은 애써 외면해온 더러운 집안 곳곳을 낱낱이 볼 수밖에 없었다. 


부엌 땅바닥에는 재료들과 분리수거 봉지가 포개져 엉켜있었다. 한쪽에는 끈적한 락앤락들과 각종 양념이, 가스레인지 주변은 먼지와 함께 굳어버린 기름때가 노랗게 변했다. 바닥에는 제대로 닦지 않은 냄비와 프라이팬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데, 냄비 개수만 봤을 땐 2인 가구가 아니라 대가족이 사는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베란다 바닥에는 먼지를 뚜껑 삼은 막걸리 통과 청주 병, 고추장 통, 각종 발효 식품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빨래통을 열기 귀찮아 뚜껑 위에 둔 빨래가 수북이 벽이 된 지는 오래였다. 농사를 막 짓기 시작한 터라 흙과 농산물이 각종 양념 통과 빨래통 사이에 자리 잡아 그사이를 곡예 하듯 넘어가야만 냉장고에 닿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먹다 남은 간장 종지, 언제나 먹을 거라고 외치는 유통기한이 빠듯하게 남은 영양제들(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손으로 버려졌다.), 소쿠리에 대충 얹어놓고 말라가는 과일들이 차지했다. 덕분에 언제나 나의 또 다른 가족, 초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집은 그렇게 변해버렸다. 


무시하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었구나. 쏟아진 된장찌개 앞, 아픈 새끼발가락을 붙들고 펑펑 울었다.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봐주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고 서러웠다.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공간. 나의 중심을 세우고 내가 편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엄마의 집. 그 외에 청소년인 내가 있을 공간은 없었다. 떠날 수 없기에 어떻게라도 함께 공존하려 했으나, 나 하나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었다. 


서량이 돌아오자마자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서량은 미안해했지만, 그 삶의 습관은 노력해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했다. 행동은 관성적이라 서량이 살아온 오십 년의 세월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라 흙더미와 주렁주렁 늘어트린 작물들을 보고 자란 서량. 정리를 못했던 경애를 보고 배운 서량을 바꿀 순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서량에게 관성적으로 행동했다. 서량의 돌봄 노동을 당연히 여겼고, 매번 청소 때문에 잔소리했다. 서량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내 중심을 잡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막대하던 관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거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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