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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09. 2022

라면 먹고 가라 하는 자취녀

내 삶은 현재 진행형 3


“자취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지 모르겠다. 처음 그 단어를 썼을 때나, 지금 누군가 내게 그 단어를 갖다 붙일 때나 불편하다. 


자취하냐는 질문을 처음 받은 건 대학교 개강 파티에서였다. 처음 질문을 받은 순간, 친구랑 같이 산다며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들게 했던 첫 번째 공신은 JTBC의 마녀사냥이었다. 19금 토크를 방송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공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금기시되는 이야기를 하는 데서 해방감을 느꼈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프로그램이었으나 소재가 바닥나기 시작하자 시청자 사연들은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대담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의 카타르시스는 잠깐, 남성들 이야기 속에 쌓여있는 여성성에 대한 편견들은 축적되어만 갔다. 남성들이 모여서 자취방에 사는 여자, 혼자 사는 여자가 좋다는 부류의 반복되는 발언들은 자유로운 성적 실천이 현대 사회의 미덕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라면 먹고 갈래요?” 

왜 그렇게 라면에 집착하는 것인지. 이는 당시 내게 남성들이 자신의 욕망에 응하는 것처럼 여성들 역시 그렇게 하는 게 맞는다는 세뇌에 가까웠다. 선택지에는 나 역시 욕망을 발휘할 것인가 말 것인가밖에 없는 듯했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성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논의되지 않는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와 성생활의 압박에 대한 불편감을 당시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시청하지 않는 것으로 불편한 감정을 회피했다. 지금에야 성적자기결정권은 행하는 것이 아닌 침해 받지 않을 권리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몰랐던 때나 지금이나 자취하냐는 질문 안에 1인 여성 가구에 대해 남성들이 환상과 욕망이 투영된 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콘텐츠 속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식의 변주된 대사는 ‘먹힌다’. 성인이 되고 난 뒤의 홀로 사는 집이라는 공간은 쉽게 섹슈얼리티한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홀로 상경한 나는 공적인 자리에서 자취한다는 말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자취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내게 준비된 거짓말이 없었다. 치밀하지 못하면 들통나기 쉬웠다. 더 있고 싶은 술자리 중간, 막차 시간이 되기 전 뛰쳐나와야 하는 의지력도 필요한 일이었다. 연이 없었던 장소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쉽고, 유일했던 선택지는 한 블록을 떨어져서 살아가는 동기들과의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있다 보면 으레 자취하는 친구들이 남았고, 서울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외로움과 가까움을 계기로 친해졌다. 나는 그래서 치밀한 거짓말을 하며 내 안전을 지키기보다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


내 의지와 달리 그 네트워크에 속하진 못했다. 술자리는 남성 동기들이 가득했고, 그들은 그들만의 단톡이 있었다. 대학교 남성 단톡방 사건이 불거지기 전 한 번 학교 학생회의 한 부서에서는 남학생들만 모여있는 단톡이 있었다. 그들은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번호를 붙인 사진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무슨 맥락인지 몰라 듣고 있다 뭐냐 물었다. 


“너는 몰라도 돼.”


그들은 번호를 붙인, 여성에게 알릴 수 없는 사진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교 주변에서 학생회 회의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러 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과 대화들이 하루 안에 너무 많이 일어났다. 그 모든 비워진 맥락을 물어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의 웃음거리는 나와 같은 여성들이었으므로. 


또 한 번은 친했던 남성 동기 Z가 다른 여성 동기에 대한 루머를 내게 전했다. 늦은 밤까지 남성 동기 집에서 이어진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일어서는데 여성 동기 한 명이 일어서지 않고 몇 시간 후 같이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Z는 다 큰 성인 남녀가 한 방에 있으면 무엇을 하겠냐며 여성 동기가 남성 동기와 잤을 거라고 했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공간에 있었던 이유만으로 여성만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있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 지 몰라 눈동자만 굴리며 서 있었다. 주변 남성 친구들과 같은 반응을 남성이 아닌 나는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으며 얼어붙어 있으면서 즉각적으로 내 행동거지를 돌아봤다.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끼리 그런 얘기를 전하고 있었다니. 또 내가 듣지 못한 얼마나 많은 여성 동기들의 뒷얘기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따위 얘기를 흥미진진하다는 듯 이야기하다 Z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나를 보고 뒤의 말을 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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