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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10. 2022

자취방이 다 그렇지 뭐, 여긴 다 이래

내 삶은 현재 진행형 4

“벌써 괜찮은 집은 다 빠졌죠.”


대학 기숙사에서 떨어진 걸 확인함과 동시에 전공 건물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는데도 벌써 방이 없단다. 이러다 길에서 자는 거 아니야? 기숙사 배정은 왜 이렇게 늦게 해주고 난리야. 아니, 그래도 아직 1월 말인데 방이 없어? 호들갑을 떨며 서량과 당일치기로 서울을 향했다.


“인터넷, 그리고...? 뭐요?”


아 헷갈려. 뭐내라고 했더라?


“수도세, 인터넷 포함이요. 전기세, 도시가스는 따로 내셔야 하는 데 주변에는 다들 그렇게  해요. 괜찮은 곳들은 다들 이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내가 뭘 더 내야 하는지 외우지도 못했는데 중개사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아우 새내기요? 재밌겠다. 여학생이라 좀 더 깔끔한 집 따로 빼서 보여줄게요. 여기 집은 다 빌트인(붙박이) 돼 있어요. 짐 많이 해서 들어오지 말아요. 몸만 들어오는 게 최고예요.”


서량의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언니의 집을 보러 다녔으니, 서울 물가는 서량도 대충 알겠지? 공인 중개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본 집들은 깔끔했으나 부산집 제일 작은 방보다도 작아 보였다. 그렇게 가격대가 있는 집을 보는데도 딱히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다. 다들 고시원 딱 세 배 되는 크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집에 매달 오십씩 낸다니. 집을 네 개를 봤는데도 다 그 모양이니 마땅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부동산을 나왔다. 눈치 보는 사람 하나는 줄이고 싶었다. 어느 정도 시세와 구조는 본 걸로 만족하고 서량과 이야기라도 하면서 학교 후문 쪽 골목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건물 문을 살피며  “원룸 있어요” 따위의 안내가 적힌 종이에다 전화를 걸었다. 


일곱 번째로 들어가 본 건물 주인 할머니는 전화를 받고서는 바로 나오셨다.


“중개비라도 아껴야지. 딸이 딱 봐도 야무지네”라며 나오셨다. 방값은? 


“여긴 다 그래. 천에 오십이야. 관리비는 오”


여긴 다 그렇구나. 공인중개사 말이 맞았다. 조금 더 싼 곳도 봤으나 달 오만 원에 창문 하나, 혹은 세탁기를 내놔야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이유로 관리비를 오만 원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에 일 층이라고 불리지만 반지하에 가까운 방부터 봤다. 할머니 역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할머니는 하이라이터의 불을 올렸다. 


“여기는 인덕션이라 원룸에 가스 냄새도 안 나고 좋아요. 여기 이렇게 불 들어오죠? 우리는 2구짜리야. 그리고 일 층이라도 여기가 와인 저장고 마냥 약간 아래로 들어가 있어서 동굴 같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요. 그리고 방이 작아야 전기세랑 난방비가 많이 안 나와요. 여기가 서향이라도 요즘 애들은 다 암막 커튼 치고 살아서 오히려 해 안 들어오는 걸 좋아하더라고.”


싸구려 하이라이터는 좋은 것 마냥 얘기하면서 에너지 효율 5등급짜리 냉장고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말마따나 추웠던 바닥이 금방 미지근해졌다. 작다는 단점을 어떻게 저렇게 표현하지? 할머니는 이미 모든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들을 꿰고 미리 읊었다. 듣는데 점점 처량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멈추지 않고 설명이 이어졌다. 


“저기 쪽문으로 들어가면 학교 여기서 일 분밖에 안 걸려요.”

그 근방 어딜 가나 학교 가는 데는 일 분 정도 걸렸다. 삼 분 정도 걸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일 층이라고 창문에도 여기 다 튼튼하게 저걸 달아놨어요. 열기 쉽게 하라고 저렇게 갈라진 거 보이죠? 흰 색깔로 해서 인테리어처럼 보이지 않아요? “


쇠창살을 쇠창살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인테리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로 벽지 한 면이 나비 무늬인 건 더 마음에 안 드는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는 불을 잠시 켰던 하이라이터에다가 손을 올렸다. 


“아직 미지근하지? 저번에 다른 학생 방 보니까 여기 근처에다 수북이 뭘 쌓아 놓고 살더라고. 여기 오고 다닐 때 불날 수도 있으니까 꼭 종이 같은 거 주변에 두지 말고.” 


그 말은 이 방 역시 이전에도 누군가  살았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 커다란 대학가 원룸촌에 들어올 사람이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이전에 봐왔던 방에서 봐온 색 없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전화 한 통이면 세입자가 안 될 수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오 분 뒤에 순순히 문을 열어야 하는 사람들. 쭈뼛쭈뼛한 얼굴들은 자신이 있던 공간을 채우게 될 다음 사람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온 애들은 다 잘 돼서 나갔어. 이 방도 회계사 합격해서 나갔잖아. 여기가 터가 좋아.”

그들이 잘되건 말건 집을 선택하는 데 중요치도, 터가 좋다는 말은 믿지도 않았다. 중개사도 그러한 말을 했다. 이 좁디좁은 공간에 살았던 학생들이 있었다고.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며 서량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래, 여기로 하자. 


그 공간을 차지할 존재들이 있다고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춥고 무거워진 몸뚱어리를 이끌고 다른 곳을 가더라도 여긴 다 이 정도다. 네가 완벽히 만족하지 못하는 이 방 한 켠을 차지할 존재들은 언제든 있고, 그렇기에 이 선택이 딱히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기에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할머니는 적절한 순간에 열과 성을 다해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 집에서 또 따뜻한 물이 나오나 화장실 샤워기를 틀어보는 것도 미안하게 만드는 그런 얼굴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원룸촌에 머문 그들도 역시 만족하지 못하는 이 원룸촌 사이를 떠돌아다니다 그저 그렇게 봤던 그 방들을 잠시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처음 서울 대학가에서 집을 본다는 건 삶의 기대치를 낮추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몸만 들어가면 되는 다섯 평짜리 원룸이 내 첫 집, 아니 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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