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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11. 2022

임시의 상태, 자취

내 삶은 현재 진행형 5

“ 집에 안 가도 되니?”

벽에 걸린 시계가 밤 9시쯤 됐을 때 친구 H의 부모님이 걱정스럽게 물어보셨다. 천진난만하게 “엄마는 걱정 안 하세요!”라며 H 부모님께 안가도 괜찮다고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노는데 엄마가 도착했다. 평소에 잘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각, 엄마에게 이끌려 나오며 호되게 혼났다. 전략도 눈치도 형편없었던 6살은 H 부모님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물었을 때 순순히 답했나 보다. 


그날 누군가의  집에 간다는 건 집 구성원들이 다 괜찮은지 물어보고, 언제쯤 빠져나와야 하는지 눈치를 봐야 하는 등의 다층적으로 눈치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배웠다. 그때부터 누군가의 집에 가는 게 금기 같은 일이 됐고, 그래서 더 짜릿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 집이 빈 시간대를 틈타 잠시 잠깐 서로 금기를 넘어가 보곤 했다. 


그들이 물건을 두는 방식은 그들의 성격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부모님들의 취향으로 뒤섞여 있는 가구 안에서 그들이 가진 물건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학교 서랍 정리 방법은 다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짝꿍 사이에 걸어놨던 쓰레기 봉지랑 내 자리용 빗자루, 왼편은 교과서, 오른편은 스터디 플래너랑 노트들. 중간에는 수저통이랑 필통. 그 사이에 유일하게 재밌던 건 그들의 필통 구경이었다. 그들의 집에 처음 간다는 건 커다란 필통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열 아홉,  온전한 내 공간을 가지고서 집에 대한 금기는 사라졌다. 누군가 초대하고 싶을 때 초대할 수 있다니. 언제든 원하면 친구들을 불러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장소를 가지다니. 친구들 집에 가는 것 역시 훨씬 자유로웠다. 짜릿한 집 탐방기는 추억 속 일이 됐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연락이 없어도 언제 들어가건 신경 쓰는 사람도 쓸 사람도 없었다. 여기저기 가입한 동아리, 학회, 대외활동 OT 뒤풀이에 붙어있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집에 가지 않아도 됐다. 자취방은 제약이 없는 일탈의 장소였고, 비일상의 장소였다. 공간을 꾸리고 나에게 맞는 생활 습관을 꾸리는 것은 뒷전이었다. 고등학생 때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던 일상을 어떻게 해냈는지 당최 기억나지 않았다. 


금기였던 것이 조율할 수 있는 것이 되자 그 모든 짜릿함은 금세 무뎌졌다. 내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무한한 자유라고 믿어왔던 것이 피로했다. 일탈이 일상이 되는 건 피곤했다. 다섯 평의 공간이 친구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됐다. 그건 통제뿐만 아니라 규칙조차 없는 공간이었다. 


좁은 자취방 안에 꾸역 꾸역 화장실, 세탁기, 부엌, 에어컨, 냉장고가 들어차있었다. 여전히 학창시절 엄마가 골라준 가구 대신 공간의 규격에 맞춰 최적화되어 나온 싸구려 합판의 가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비 문양의 벽지와 체리색 시트지로 마감된 빌트인 가구들이 내 공간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공간에서 살고 있었다. 들어서기 전부터 그저 새 학기 사물함과 책상 서랍을 채우듯 내 첫 공간을 채워 넣고 있었다. 언제든 떠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필요해도 물건을 사지 않았고, 제일 싼 것들로 때웠다. 

빼곡한 다섯 평 짜리 방 유일하게 비어 있던 건 작은 냉장고뿐이었다. 그 위에는 내가 들여온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27만원짜리 중고였다.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 오븐, 살균과 탈취, 해동까지 다 되는 만능 전자레인지였다. 


“아니 자취하면서 왜 그렇게 비싼 걸 사? 결혼하고서 좋은 거 사.”

“엄마 나 언제 결혼했으면 좋겠어?”

“서른 넘어서지.”

“내 나이 지금 18살인데? 엄마 지금 저 전자레인지 10년 넘게 쓰고 있잖아.”


그렇게 명료하게 설득해 얻어낸 전자레인지 속에는 홀로 서야 하는 삶의 긴 기간을 직관적으로 알아챘던 내가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딱 자취였다. 책상 위에서 밥을 먹었고, 누워서 척추 비틀기를 위해 양쪽으로 번갈아 발을 쭉 뻗을 수 없어 무릎을 굽혀야 했던 공간이었지만, 잠시라고 생각했기에 괜찮다 여겼던 순간 역시 내 삶이었다. 


내 손안에 처음 주어진 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몰랐다. 임시의 삶, 자취의 상태를 거부하기로 했다. 1년을 혼자 살더라도, 2년을 누군가와 함께하더라도 더 이상 그 삶을 내 인생에서 예외적인 특수한 상태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나의 삶을 연속적으로 보려고 한다. 좋은 삶은 몇 번의 좋은 경험과 특별한 순간, 이벤트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과 좋은 습관들로 채워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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