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삐 May 17. 2022

의존할 수 없는 자립은 고립

홀로 설 수 있을까 3

* 이 챕터에 인용된 1인 여성 가구 인터뷰는 <여성 1인 가구 혼자 있지만, 연결되어 잇는 - 은평구 여성 1인 가구 설문조사, FGI 결과 분석, (이상희, 2018)>에서 발췌해왔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며 원 인터뷰를 실었다. 

통계는 전체를 보여주지만, 개별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빼앗을 때가 많다. 1인 가구의 수가 562만, 그중의 여성 1인 가구가 반. 그 중의 65%가 35세 이상이라는 사실은 그 어떠한 의미도 보여주지 않는 수치에 불과하다. 이렇게 쓰고도 한국 인구에서 4%가량의 여성들이 사별, 이혼, 비혼, 미혼 등의 이유로 혼자서 35세 이상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데 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가 그렇게도 힘든 걸까. 


처음 그들을 마주한 건 2018년 하늘이 높다랗던 초겨울 서울혁신파크 “여성 1인 가구 프로젝트”였다. 각종 여성주의 세미나를 돌아다녀 봤지만 30대 이상의 참여자들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누가 봐도 어머니뻘 되는 분들이 반을 차지하고 계셨다.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은 평범했다. 그러나 이 사회에 정책 안으로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이, 비일상의 존재로 여겨왔던 사람들이 무엇이라도 해보기 위해 그 자리에 모여있었다. 


처음으로 들리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론은 언제나 치안을 여성 1인 가구의 문제라고 말해왔지만, 나는 아니었다. 언론이 언제나 떠들어대던 치안은 겨우 3순위였다. 당사자들의 입에서 실질적이고 장기적으로 나온 문제는 바로 건강이었다. 건강은 치안의 약 2.5배의 압도적인 점수를 얻으며 1순위를 차지했다. 다른 1인 여성 가구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언론이 치안을 여성 1인 가구의 문제로 떠들어 댈 때(그것이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나의 문제라고만 여겼던 불안감은 다른 이들의 경험에도 똑같이 녹아 있었다.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몇 번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왔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던 초여름날 지하철 안. 널찍한 지하철 안에 앉아 있는데 서서히 숨이 차올랐다. 이러다가 호흡이 멈추면 어쩌나 싶어 한의사인 육촌 할아버지께 전화해서 증상을 말했더니 괜찮을 거라고만 했다. 젠장. 우선 숨을 쉬긴 하니 집으로 가긴 가야하긴 하는 건가. 근데 땅은 움직이고 숨은 턱턱 폐에 걸리는데 어떻게 집에 가지.


헐떡거리며 안전귀가서비스에 전화를 걸었다. 지하철에서 마중나오신 스카우트 분들 양 팔에 거의 매달려서 집으로 갔다. 집 문을 못 열겠어 초인종을 눌렀다. 룸메이트가 놀란 눈으로 문을 열고 나를 받았다.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집에서 물과 약을 가져다 줄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다 다행인지. 울면서 침대에 누웠다. 울면서도 내가 전화를 걸 할아버지가 있다는 게, 안심귀가 서비스를 며칠 전에 저장해놨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날 밤 큰 탈 없이 지나갔고, 나를 지켜주고 지지해주는 사람과 같이 살아서 서럽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천 번 중 천 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