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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16. 2022

천 번 중 천 번

홀로 설 수 있을까 2

* 이 챕터에 인용된 1인 여성 가구 인터뷰는 <여성 1인 가구 혼자 있지만, 연결되어 잇는 - 은평구 여성 1인 가구 설문조사, FGI 결과 분석, (이상희, 2018)>에서 발췌해왔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며 원 인터뷰를 실었다. 

S 이모는 내심 서량을 궁금해했지만 서량은 도통 다가가지 않았다. 저녁에 반찬을 가져다드릴 때 엄마가 가면 안 되냐면서 기회를 줘도 가지 않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주말에 옆집에 같이 놀러 가자고 물어보면 안 된다는 서량. 친해지는 게 부담스럽다니.  S 이모의 기대와 달리 서량의 마음을 열지 못한 나는 서러웠다. 


“엄마는 옆집 사람들이랑 친해지기 싫대요!” 


가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떨쳐 내버리고자 멋대로 솔직해져 버렸다. 나 역시 노력했지만, 엄마의 마음을 열지 못한 건 내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모에게 알렸다. 그런 이기적인 솔직함에 S 이모와 서량이 간신히 해내가던 그저 그런 안부 인사는 멈춰버렸다. 서량과 S 이모는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올라가는 것만 바라보았다. 초등학생의 나는 어색한 공기를 눈치채지도 못한 채 혼자 속 시원해하고 있었다. 


이웃과 거리를 두는 서량처럼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웃들에게 가족을 설명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 많은 질문과 걱정을 산다는 것에서부터 다름을 느꼈다. 결국 설명하기 어려울 때 진실 섞인 거짓으로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 넣고서 가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살아계셨다가, 돌아가셨다가, 야근이 잦은 회사원이었다가, 엄마의 애인이 되었다. 내 형제는 엄마 애인의 자녀가 포함되기도 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오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누구에게 언제 말했는지 다 기억하지 못했다. 


한 번은 한 자리에서 다른 가족관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거짓말쟁이가 됐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헷갈리는 관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웃들과 관계를 끊어야만 했다. 일하면서 살림과 육아를 모두 해내는 엄마가 자랑스러웠지만 그걸 대외적으로 떠벌리고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친구들에게는 아빠의 빈자리를 뻐꾸기 아빠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솔직해져도 괜찮은 관계에만 내 가족사를 ‘털어놔야’ 했다. 


학교에선 여타 다른 가정 통신문과 같이 빼곡한 효율을 따진 양식 속에서 가족관계를 적게 했다. 부의 칸은 항상 맨 위였다. 그 종이를 보자마자 선생님의 다음 수를 생각했다. 작은 배려도 기대하지 않았다. 개인정보를 쓸 때조차도 효율을 위해 맨 뒷줄에서부터 종이를 걷어가겠지. 거짓말로 겨우 채워놓은 애비의 ‘빈’ 자리를 비워두면 안 됐다. 선생님은 종이를 걷던 애가 보고 어떤 말을 퍼트릴지 두려워하는 학생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하겠지. 어떤 말들이 나를 옥죄어 올지 선생님은 예상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았다. 뒷자리의 학생들은 언제나 나의 거짓으로 채워진 가족 사항을 보며 넘어갔다. ‘엄마’라는 단어로 충분한 나의 언어는 ‘부모님’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부족했다. 그들은 천 번 속에서도 등장하지 않는 나의 부의 존재를 물었다.


백이면 백, 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이 얼마나 공고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맞지 않는 양식. 천이면 천, 다른 나의 언어. 매 순간 느껴야만 하는 작은 빈칸들과 자질구레한 언어 속에서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그 어떤 빈칸을 느끼지 않는 나에게 사회는 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천이면 천, 다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어는 속하는 척할 뿐, 내 삶을 변하게 하지는 못했다. 언어는 내 삶을 부정했다. 천이면 천 번 뻔한 그 질문을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를 오히려 지키는 일이었다. 


서량에게 서서히 동질감을 느꼈다. 정상 가족으로 가득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속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편할 것이라는 걸 이해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서량이 이웃들과 교류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라기보다는 자신과 우리를 우리로서 지키는 법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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