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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May 23. 2022

외동딸의 숙명

홀로 설 수 있을까 6


* 이 챕터에 인용된 1인 여성 가구 인터뷰는 <여성 1인 가구 혼자 있지만, 연결되어 잇는 - 은평구 여성 1인 가구 설문조사, FGI 결과 분석, (이상희, 2018)>에서 발췌해왔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며 원 인터뷰를 실었다. 


가장 가까이서 내 미래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 서량은 홀로 꾸려가는 멋진 삶을 보여주는 존재다. 일하며 불교 대학 수업을 듣고, 천 염색을 취미로 하며 유화, 팝아트, 수묵화를 넘나들며 그림을 그린다. 농사는 게다가 8년 차, 방에는 따로 효소와 절임 장까지 만들어놨다. 명예 퇴직 전부터 이미 하고 있는 취미가 넘쳐나고 꿈많은 서량이다. 


“요기 요기(여기 여기). 이거 검버섯이다.”


이제 겨우 50 중반인 서량의 손에 검버섯이 피기 시작했다. 코로나 여파로 장기간 부산 집에 머물렀을 때, 청소하며 30대 서량의 사진을 찾았다. 그 사진 속 서량은 보다 주름이  내가 기억하는 서량은 생각보다 서량의, 우리의 시간은 빨랐다. 일 년에 기껏해야 한 달 정도 같이 있을 수 있는데, 나중에는 그것조차 더 힘들어질 텐데. 서량에게 서울로 상경할 생각은 없냐 물었다.


“싫다.” 


단호했다. 내가 서울에 일구어논 내 생활과 삶이 있는 것처럼 서량에게도 부산에 일궈놓은 삶이 있다. 서량의 동생들, 친구들, 취미 생활, 좋아하는 식당, 내비게이션 없이도 외우는 길들은 다 부산에 있었다. 나를 위해 서량의 모든 걸 내려놓고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만약 더 시간이 지나 서량이 아프면 서량을 돌보기 위해서 모든 커리어를 멈추고 내려가야 하나? 경제적인 부담으로 일을 계속 해야 한다면 서량은 홀로 혹은 요양사의 손 아래에서 아픈 몸을 돌보게 해야 하나? 혼자이기에 서량이 아프면 나 혼자 그 모든 돌봄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 외동인 나는 그게 너무 명확히 그려지는 가까운 미래다.


그건 비단 나 혼자 만의 문제가 아닌 많은 (특히나 1인 가구) 외동딸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문제다. 외동딸이 아니더라도 다른 자매, 남매가 가족이 있다면 1인 가구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 잉여 돌봄 노동의 존재로서 부모님의 독박 돌봄노동을 도맡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가족들이 보기에 저는 (중략) 1인 가구나 제 삶의 방식 이런 것보다는 그냥 나가 사는 것뿐이죠.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제가 그거(삶의 방식)를 아무렇지 않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일들이 있는 거 같아요. 수시로 말씀하셨던 게 그냥 집에 내려와서 있어라, 뭐 이런 거였고. 그냥 무작정 뭐 와서 다른 일 해도 되잖아, 라는 식으로 제 어떤 다른 가치관들을 되게 쉽게 없앨 수 있게 된 거예요.”(20대, 1인 가구 7년, 은평 1년)


당장의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이상, 여성들에게만 사회가 돌봄 노동을 떠맡기는 이상 1인 여성 가구의 삶은 언제나 호출 가능한 돌봄 노동의 존재로 대기 중일 테다. 1인 여성 가구 하면 떠오르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20대 30대 여성들의 삶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2017년 통계청 기준 45세에서 64세 1인 여성 가구는 84만 2천 가구이다. 이미 전체 1인 여성 가구 중 30%를 차지하는 인구가 부모의 독박 돌봄 노동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곧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니까 점점 아픈 곳이 생기잖아요. 누군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그럴 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점점 생겨요.”(30대, 1인 가구 10년/은평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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