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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Jun 01. 2022

괜찮아

선택한 식구 1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내 몸을 칼로 갈기갈기 헤집는 상상을 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서 몸서리를 친다. 한없이 무섭다. 나를 해하는 장면을 간헐적으로 하루에 두세 번씩 상상한다. 수업을 듣다가,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책을 읽다가 문득 그렇게 헤집는 상상을 한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가 한없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해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 감정이 그냥 호르몬 때문이라고, 내가 지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내려고 노력한다. 눈을 뜨려고, 내 소중한 친구들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그 얼굴들을 보려고, 나는 잠시 버티는 느낌이 든다. (일기 발췌)


우울증이 심했을 때, 나는 행복했고, 한없이 안전하고 아늑하게 꾸민 나의 공간 안에서 나를 해하는 상상을 했다. 집사람 방문을 두드렸다. 


“나 안아줄 수 있어?”


집사람은 어떤 것도 묻지 않고 나를 안아줬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내 몸이 여기에 있다, 내 몸은 안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몸이라는 걸 포옹으로 말해줬다. 베개를 들고 찾아간 날에는 자신의 침대 한켠을 내어줬다. 


종종 나를 견딜 수 없는 날이면 그날의 포옹이 떠올랐다. 다른 방을 쓰는데도 같은 지붕 아래 누군가 있다는 이유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집사람이 밖에서 자는 날이면 잠이 드는데 더 오래 걸렸다. 약간의 소음이, 조용히 화장실과 마루를 오가야 하는 그 조심스러움이 내가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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