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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Jun 06. 2022

떨어져 살아도 식구

선택한 식구 5


“박윤정, 밥 좀 떠라.”

열심히 타이핑하며 방 안에서 이미 늦어버린 중간고사 대체 과제를 하며 애써 서량의 외침을 뒤로 미뤄놓고 있었다.

“아니야~. 박이윤정~”

서량 집에 놀러 온 보배는 깔깔거리며 특유의 사투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안가나?” 

휙휙. 손과 표정으로 ‘네가 가’라 했다. 순간 나도 보배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보배는 활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이 새끼 오늘 날로 먹네?”  

나도, 보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배와 나는 인문학 토론회 기획팀원으로 처음 만났다. 토론회를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레 정교하고 섬세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병신’이라는 단어가 장애인 혐오라는 걸 조심스럽게 처음 알려 준 사람 역시 보배였다. 보배는 만나면 두 팔 벌려 “아이구, 내 새끼~”하면서 나를 꽉 안아주며 반겨줬다. 사람을 환대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보배의 사랑에서 배웠다. 

그런 우리가 서로 대책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에 피식 웃고 넘어갔다. 대책 없는 대화들과, 맥락 없이 울며 시작하는 통화, 그 모든 것들이 보배와는 가능하다. 미투 운동을 각자의 자리에서 해온 보배와 나기에 스킨십이 얼마나 큰 성추행이 될 수 있는지 서로 잘 알고 있음에도 보배만은 내 뱃살과 팔뚝 프리패스권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성적이지 않은 순간마저도 이해할 수 있게 됐는지 모른다. 

다만 한때 성장하고 변화를 함께했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잘 안다는 착각이 폭력적임을 이해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의 변화를 믿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떨어져 살아도,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서량은 내 가족이듯, 보배 역시 오래 떨어져 있음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안길 수 있는 품이 있다는 믿음. 돌아갈 고향은 없어도 돌아갈 사람이 있다는 것. 언젠가는 내가 아플 때, 서로가 늙었을 때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 그를 돌보는 것이 사실 나를 돌보는 것이기도 한 존재. 그래서 나는 보배를 영혼의 식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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