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식구가 있어도 2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학교와 학원이 아닌 곳에서 모든 관계를 선택할 수 있었다. 관심있기에 발걸음을 한 곳에서 나와 닮아 모인 사람과 친해졌다. 즐거움이든, 성장이든, 일이든 명확한 이득을 주는 관계라는 걸 서로 느껴야지 다음이 있었다. 성격이든, 취향이든 뭐 하나 다른 사람들과 부대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급식을 먹고 나서 운동장을 걸으며 나눴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던 일상은 약속을 잡아야만 가능한 일이 됐다. 학창 시절 때처럼 치열히 서로를 이해할 이유도 기회도 없었다. 나와 이야기를 해달라고하기 위해선 다음 약속을 굳이 잡아야 했다. 애초에 서로의 ‘다름’이 견딜 수 없는 것이 되기 전부터 서서히 멀어져갔다. 싸우지 않아도 됐기에 명확한 이별을 짓지도 않았다. 다른 점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세상에 사람은 많으니까. 비슷하다는 이유로 쉽게 친해진 만큼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쉽게 멀어졌다.
집사람과 산다는 것 역시 같음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다름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싸우지 않고 싶어서 한 번 참아야지 하고 넘어가는 순간들이 쌓일수록 차이는 점점 더 명확해졌다. 다르다는 걸 확인해 갈수록 이해해야 하는 폭도 더 커졌고 말해야 할 것도 더 많았으나, 그 작은 불편함과 차이들을 다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더 싸우지 않았다. 그렇게 집사람들과 부동산 계약이 끝날 때를 기다리며 이별의 순간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