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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Jun 15. 2022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과 사는 법

선택한 식구가 있어도 3


친구와 산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생활습관이 달라 싸우지 않냐 물어본다. 그런데 가족과 산다고 하면 그런 걱정을 듣지 않는다. 내 인생 가장 길게 살아온 서량과 원룸에서 같이 산다고 하면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싸울 것 같은데 말이다. 17년을 서량과 함께 살 수 있었던 건 참고, 이해하고, 싸웠던 시간을 당연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도 친구든 가족이든 생활 패턴은 다르다. 서량이 17년의 주말 동안 일찍 나를 깨우려 했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내 생활패턴 역시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서량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집안일 하는 방법 역시 다르다. 정리 못하는 맥시멀리스트 서량과 살면서 갈수록 함께 못산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다르기 때문에 내 이야기에는 서량의 이야기가 많다. 서량의 고유한 삶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서량의 다른 삶은 결국 나의 삶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며 기억된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서로가 각자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들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그 자체였다. 처음 친구와 살면서도 달랐기에 서로의 옷 취향, 플레이리스트, 영화 취향, 미래의 진로를 공유하면서 닮아갔다. 내 역사에는 전 집사람들 역사도 함께 맞물려 있었다. 


닮아가며 또 달라지고 영향을 끼쳤던 집사람들이었지만, 서량과 달리 다시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전 집사람들과는 서로 스며드는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의 다름에 관해 얘기할 때면, 각자의 삶을 침범하지 하지 않는 선을 찾기 위해 애썼다. 서로의 삶이 개별적으로 유지돼야만 바람직한 생활이라고 여겼다.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더 남이 되어갔고, 서로의 미래에 스며들지 못할 것 같았다. 함께인 미래를 그릴 수 없었다. 


서로의 고유함을 받아들이고, 또 영향을 받으며 서로의 역사에 스며들 수 있다면, 기꺼이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생활방식이 달라도, 싸우더라도 그래도 그 자체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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