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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Oct 08. 2020

공평한 집안일. 너는 살림, 나는 장보기랑 분리수거

가족이 이런 거라면, 난 결혼 안 할래 2

결혼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합리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결혼 준비단계를 떠오르다 결혼을 물렀다. 결혼식 자체가 아리따운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뒤에서 누가 내 면사포를 끌어주지 않으면 꽃처럼 앉아있어야 하다니. 나는 우선 힐조차도 못 신겠다.  


겨우 같이 살아가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니 분리수거를 고른 가사의 분담으로 여기는 남편이 떠올랐다. 일사불란하게 집 안 청소의 순서와 계획, 장을 무엇을 볼지 스케줄을 고민하고 청사진을 그려보는 건 나다. 이런 엄청난 멀티플레이를 할 수 없으면서 이런 일이 별거 아니라고 믿는 남성 친척과 사촌들, 남성 친구들이 널렸다. 김치통에 김치를 채워 넣고, 음식물 쓰레기를 하수구 통에서 걷어내고, 청소기 필터를 갈고 주문하고, 냉장고 속 재료가 언제쯤 상하는지 고민하며 반찬을 하는 것 등. 자잘하게 시간을 좀먹는, 끝나지 않는 집안일을 해내고 신경 쓰는 건 아무래도 내가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연애하며 집에 가 전기밥솥 뒤 물구멍 청소는 하는지 검사할 수는 없지 않나. <공평한 살림을 위한 남편감 찾기 체크리스트> 같은 제목으로 싱크대 하수구는 깨끗한지 등의 항목을 짠 가이드라인을 짜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거기서 일정 점수는 통과해야 그다음 장인 친인척 관계 대응 모의고사를 볼 수 있다는 에필로그를 덧붙이고 싶다. 그 정도 체크리스트가 필요한 사회라고 생각할 만큼 내 주변 남성들은 여성의 노동에 기대어 살고 있다. 10대 때부터 명절에 전 부치는 여성들과 20대 후반이 돼서도 엄마에게 반찬을 얻어먹는 남성들이 가득하다. 이런 사회라면 과연 결혼을 하고 싶어도 과연 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이 든다.


여전히 분리수거장에서 “오늘도 나오셨네요” 하며 아내의 등쌀에 떠밀려 나왔다는 애환이 섞인 눈빛을 교환하는 남편들을 본다. 장을 보고 무거운 걸 들고, 분리수거하면 공평한 줄 알다니. 힘을 쓰는 것에 가치를 매기는 것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50대 여성들의 손목터널 증후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집안일 때문이다. 여성들은 행주 하나 짠다고 뿌듯해한 적 없다. 장보고 잠깐 무거운 거 들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살림을 할 때 뿌듯한 마음, 그게 바로 살림을 도와준다는, 살림에 자신의 역할은 없다는 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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