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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Oct 08. 2020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가족

가족이라서 

여름에 다닥다닥 붙은 빌라에 바깥 어느 집 쪽에서 자주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지긋지긋하다면서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 말리는 딸의 간절한 울먹거림이 삐져나온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떠올려본다. 겉만 화목해 보이는 가족은 얼마나 될까. 얼마만큼의 가족이 겉으로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사는 걸까. 적어도 우리 집은 그중 하나였다. 아니, 과연 겉으로 보기에도 좋은 연극은 해냈을까? 이중문 너머, 이중 창틀 사이 우리 집의 싸우는 소리가 옆집에 새 나가진 않았을까. 


나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의 살에선 언제나 아기 냄새가 났다. 언제나 아기처럼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몸이 약했다. 갑자기 코피를 뚝뚝 흘리는 것은 일상이었고, 이유 없이 앓아누웠다. 유명하다는 한의원은 다 찾아다니고 꼬박꼬박 한약을 챙겨 먹었다. 당연히 조퇴와 야자 빠지기를 밥 먹기처럼 했다. 공부를 하기보다는 언제나 쉬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사람이었다. 공부하는 걸 보는 것보다 아픈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매일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미국드라마를 취미로 보면서 고등학생 때 이미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다. 처음 본 토플은 950점을 거뜬히 넘었고 서울대를 갔다. 언니는 주변인들에게 언제나 관심을 받았고, 사랑을 함께 받았다. 한 없이 순수하고 착한 친구로, 몸이 약하지만 똑똑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밖에서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던 언니는 집에서는 폭력 그 자체였다. 언니는 케첩을 냉장고에서 꺼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경을 가져오라 했는데 안경알을 만졌다는 이유로 나를 1시간이 넘도록 때리는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쇠봉으로 종아리에 피멍이 들게 맞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맞는 것을 거부하자 언니는 옷걸이를 휘둘렀다. 내 팔뚝에 길게 검은 줄무늬로 멍이 났다. 그 멍을 가리기 위해 나는 여름에 긴 팔을 입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어쩔 수 없이 가장 방심한 상태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각자가 가진 모습의 스펙트럼의 가장 안좋은 모습이 삐져나올 때가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떠나지 않을 거라 믿기에 서로에게 가장 잔인하게 굴 수 있고, 그 폭력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엄마는 결혼이라는 관계 안에서 일어난 폭력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겪어냈다. 언니가 보인 폭력 역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체벌로 받아들였다. 스펙트럼의 가장 끝, 최악의 모습을 너무 쉽게 보였고, 끝이라고 믿었던 끝의 꼬리는 길고 길었다.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공고한 관계였기에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 관계를 박차고 일어나는 건 당사자 밖에 못한다. 규정된 관계가 만들어내는 속박과 존중하지 않아도 벗어나기 힘든 관계의 고리가 무섭다. 나는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된 비극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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