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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Oct 08. 2020

힘듦을 내기하는 가족

가족이라서 2


언니의 몸은 갈수록 아파졌고, 몸 따라 마음 역시 아파지기 시작했다.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병명은 밝히지 못했다. 언니는 가족이라면 자신이 온전히 이해받고 원하는 것을 다 맞춰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 같았다. 엄마에게 많은 걸 요구했고, 엄마는 그 모든 요구를 힘들어하면서도 아픈 딸을 위해서 뭐라도 하기 위해서 아등바등했다. 그러다 작은 거 하나를 깜빡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온전히 챙겨주지 못할 때면 그 일을 빌미로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불만족, 원망과 분노를 가족에게 쏘아댔다. 


여느 날처럼 별거 아닌 이유로 언니가 화를 퍼부은 날이었다. 화내다 말곤 별안간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해 눈물을 흘리던 나는 눈치를 보며 같이 치우기 시작했다. 마루가 깨끗해지자 언니는 안방과 자기 방에서 이불과 방석을 쌓았다. 선풍기를 부수기 시작했다. 이를 꽉 물고 선풍기의 목이 너덜너덜해지게 만들고 있는 언니는 제정신이었다. 밑에 집에 피해는 신경 쓰면서 철저히 집 안을 깨부수고자 했다. 다 부수고는 그대로 전시해 놓고는 소파에 앉아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엄마는 돌아와 여느 때처럼 시위하듯이 짐승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으어어아아아아”. 불 꺼진 마루의 정중앙에서 엄마는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는 그 억겁 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엄마의 신음으로 확인했다. 그 옆에서 언니는 끊임없이 화를 냈고 엄마는 포효로서 고함을 덮으려 했다.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력하게 언니에게도 내게도 죄책감을 선사했다.  


12살까지 집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만 했던 나는 내 덩치가 언니와 비등해지면서 맞는 것을 그만뒀다. 하루는 언니와 머리를 쥐어 뜯고 싸웠다. 그 어떤 문제도 해결 되지 않았지만 서로 체력이 나가서 싸움을 멈췄다.  나는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으며 보란 듯이 엉엉 울며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야구공만한 머리카락 뭉텅이가 나왔다. 나는 세면대에 가만히 머리 뭉치를 내버려 뒀다.


엄마도, 나도 힘듦을 온 몸을 통해 전시했다. 우리는 각자 얼마나 더 속상한지, 더 억울한지, 괴로운지 전시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누가 더 힘든지에 대한 내기와 증명으로 가득했다. 제일 처절한 아픔을 보이는 자가 이기는 싸움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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