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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Oct 26. 2020

한 지붕 아래의 모습을 전부라고 착각하는 가족

가족이라서 3


“이렇게 어린애를 어떻게 서울에 보내나.” 대학 합격 발표 후 엄마와 손을 잡고 누워서 잠을 청하며 엄마는 말했다. 나는 도시의 불빛이 희끄무레 들어오는 어두운 천장을 보며 엄마가 봤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평일 아침 7시에 나가서 12시 반에 돌아오고 주말 아침에 도서관에 태워다 주며 봐온 내 모습이 고등학생 시절 엄마가 본 내 모습의 전부였을 것이었을 테지만, 지금의 은사님 첫 수업 시간, 이육사의 <절정>을 읽으며 교실 중간에서 몰래 훌쩍거렸던 걸 엄마는 모른다. 인생 첫 뽀뽀를 하고는 집에 가는 지하철 두 번을 헤맬 만큼 어질어질했던 것도, 첫사랑이 끝나고 하루는 보건실에 가서 드러누워 울만큼 앓았던 딸의 러브스토리도 알리 없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도 지나가는 참새 똥구멍만 봐도 웃긴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날 잘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엄마에게는 익숙해진 것들, 당연한 것들을 익숙해지기 위해 딸이 그때의 시절을 지나고 있고, 내 일상을 스스로 의미화하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시기라고 말이다. 중학생 때 띵까띵까 시간을 낭비하던 철없던 내 모습보다 매일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더 보지 못했을 거라고, 이제는 딸도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도 될 때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때의 엄마가 나를 몰랐던 만큼이나 나도 엄마를 몰랐다. 고향에 내려갔을 때 하루는 엄마 동료분들과 점심을 먹을 일이 있었다. 엄마가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엄마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을 세세히 쓴다든지, 강단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엄마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항상 집에서 주장 강한 딸의 말에 져주는 엄마의 모습 말고 박서량씨가 지키고 있는 단단한 세상을 만난 것이다. 엄마 역시 내가 보지 않는 시간 동안 성장하고 일상을 계속해서 의미화하고 있는 개별적인 존재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같이 살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들려주었던 일상의 작은 조각 너머의 일을 상상하지 않았다. 나 역시 생동하고 있는 엄마 삶을 집을 중심으로만, 내가 보는 대로만 보려고 했다. 한 지붕 아래에 있기에 가장 날 것의 모습을 보고, 가장 편한 모습, 최악의 모습들을 봐왔기 때문에 가족의 진짜 모습을 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른하고, 꾸미지 않고, 때로는 최악의 모습은 일부일 뿐 대부분의 일상의 순간에서 가족의 모습을 난 모른다. 


떨어져 살게 되고서는 엄마는 더 이상 내 엄마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걸 더 잘 알게 됐다. 천 염색, 뜨개질, 유화, 팝아트, 요가, 농사, 이렇게나 많은 취미를 하면서 연애도 일도 하느라 바쁜 삶을 지낸다. 

전화도 문자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르기에 많이, 깊이 이야기한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었을 때도, 내가 비건이 되었을 때도, 내가 동성애인이 생겼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모르는 존재인 나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에 나를 볼 때까지 그 말을 이해하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이제 집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고 올라오면 그 주제로 몇 달을 고민한다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고 그래서 서로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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