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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Jan 19. 2016

매섭게 추운 날, 가난한 기억

오늘도, 고마워요

잠깐 나갔다 왔는데도 금방 얼굴과 손이 빨개질 정도로 춥다. 

동동거리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따뜻한 기운.

아, 따뜻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뜨신 아랫목을 찾아 손을 넣어본다. 움츠러든 마음이 부드럽게 펴진다.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볕이 잘 들고, 수도꼭지를 틀면 온수가 콸콸 나오는 집. 

지금 나는 그런 좋은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난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일인지.


20여 년 전인가... 그날도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지은 지 오래되어 외풍이 심했던 다세대 주택에 살았는데 

도시가스비가 연체되어 도시가스가 거짓말처럼 뚝 끊겨버렸다.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았고 집은 온통 냉골이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 때문에 머리도 감을 수 없었다. 

내일 학교 가야 되는데... 투덜거리는 나와 동생들을 보며 엄마가 한숨을 쉬셨다.

엄마의 한숨이 하얀 연기가 되어 집안에 퍼지는 것을 보았다. 


그나마 전기는 끊기지 않아서 우리는 전기장판을 켜고 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누군가 곧 페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왔다.

그 페트병을 보자 언젠가 TV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불법체류자로 떠돌던 동남아 노동자들이 시골의 빈집에서 하룻밤을 나면서 

페트병에 온수를 담아서 꼭 끌어안고 자던 모습. 

따뜻한 페트병을 꼭 끌어안은 동생들을 보자니,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의 신세도, 그 불법체류자 아저씨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어린 동생들에게 전기장판을 양보하고 나와 엄마는 북극처럼 차가운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잔뜩 웅크리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도시가스비를 못 내면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자야 하는 걸까?

가난한 현실이 혹독한 추위처럼 뼈저리게 스며들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움츠러드는 밤이었다. 


오늘, 이렇게 추운 겨울날 우리 집은 따뜻하다.

도시가스비를 밀리지 않아 언제든 난방 온도를 올릴 수 있다.

어린 내 아들이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다 부모 때문이라고 원망하던 철없는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엄마에게.

추위에 벌벌 떠는 어린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을... 감히 나는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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