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숙영낭자 Aug 07. 2016

엄마가 해줄게

내 남편의 육아법

아이가 손가락에 붙은 밴드를 떼려고 한다. 그런데 떼는 폼이 영~. 

전날 밴드 떼기 쉬우라고 끝부분을 살짝 접어서 붙여줬는데...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잡고 한 바퀴 휙 돌리면

쉽게 떨어질 텐데... 녀석은 무식하게 밑에서 위로 쭉쭉 올리고만 있다. 잔뜩 밀린 밴드는 더 단단해져서 떨어질 줄 모르고 녀석도 낑낑댄다. 

"희운아. 밴드는 그렇게 떼는 게 아니고, 여기 봐. 여기 접힌 부분을 살짝 잡아서 쭉 당겨봐. 그럼 쉽게 떼 지지?"

마음속으로는 열 번도 넘게 그 소리를 하고 있지만 꾸욱 눌러 참는다. 성질 같아서는 아이 손가락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밴드를 그냥 내 힘으로 콱 잡아 빼고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참아야 하느니라~~. 


"아이가 그냥 제멋대로 하게 냅둬봐."

아이가 뭔가를 할 때 요령을 몰라서 낑낑대는 꼴을 보면 성질 급한 내 입에선 "엄마가 해줄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늘 하는 말은 '그냥 냅둬'다. 

"그래, 좋다고. 근데 방법을 모르고 헤매잖아. 애한테 요령을 알려주면 좋잖아."

"그럼 애가 '도와주세요' 할 때까지 냅둬."

누가 알려줘서 배우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시행착오를 하면서 배우는 게 더 낫다. 엄마가 도와준답시고 

섣불리 개입하면 애는 스스로 뭔가 해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다, 아이도 하다 하다 안 되면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게 돼 있다, 엄마가 나설 때는 바로 그때다. 


문득 예전에 EBS 다큐 프로에서 봤던 한 가지 실험이 생각났다. 

단어 카드를 주고 문장을 만드는 거였나? 구체적인 미션은 기억나지 않는데 암튼..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뭔가 

제대로 못하면 참지 못하고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개입을 하면서 아이가 완벽하게 하게끔 유도한다. 반면 외국 엄마들은 아이가 뭔가 실수를 하거나 엉뚱한 걸 만들어도 가만히 지켜만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시작은 아이가 했지만 끝은 엄마의 몫이요, 외국의 경우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가 주도한다.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끝까지 해낸다는 게 중요하고, 부모는 그저 '관찰자'로서만 존재한다. 

그걸 보면서 '아, 나는 한국 엄마처럼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웬걸... 

아이가 뭔가를 할 때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엄마가 해줄까? 줘봐, 엄마가 해줄게."

속으로 그 말을 몇 번이고 삼키고 있을 때, 아이가 마침내 밴드를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엄마, 봐봐. 내가 했어!"

뿌듯해하는 아이의 표정이 사랑스럽다. 엄마가 대신해줬더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아이의 표정. 




매거진의 이전글 니모의 후유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