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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Oct 02. 2016

누구를 위한 보약인가

내 남편의 육아법

시어머니께서 돈을 보내오셨다. 

"지난번에 보니 희운이가 영 밥을 안 먹더라. 이참에 보약 한 재 지어 먹여라."

"네..."

이왕 어른이 주신 돈이니 (그것도 통장으로 부치셨으니) 잠자코 받았지만 벌써 걱정이다. 

정말 보약을 해 먹여야 하나? 남들 다 먹인다는 그 흔한 비타민 영양제도 사 먹이지 않는 판에. 

그렇다고 어른이 주신 돈을 엄한 데다 쓰고 보약 해 먹였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고. 

"어머니 계실 때, 우리 희운이가 밥을 그렇게 안 먹었었나?"

"추석 때 애가 밥을 안 먹은 건 당연한 거지. 전에 과일에 식혜에... 밥 먹을 틈이나 있었나?"

남편이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보약 지을 돈을 보내주신 것을 두고 혀를 찬다. 

"또  순진한 어르신들이 한의원 상술에 속아 넘어가신 거지."

남편은 평소 아이 먹으라고 파는 보약은 한 마디로 사기라고 말해왔다. 

한의원에서 파는 총명탕이니, 키 크는 한약이니, 병원에서 권하는 성장호르몬 주사니 하는 건 특히 더. 

그럼 한의원이나 병원에서 효과 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뭔가?

나의 질문에 남편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건 순전히 '때'가 잘 맞은 것뿐이다. 아이들이 한약이나 주사를 맞아서 큰 게 아니라 

성장주기상 클 때가 돼서 알아서 큰 거다. 게다가 키는 절대적으로 유전이기 때문에 우리 애는 더 소용없다. 

 (남편이나 나나 둘 다 키가 아담한 편이다.) 

그래도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명색이 보약인데... 뭐라도 먹이면 좋긴 좋지 않을까? 

"내 말은 보약이 나쁘다는 게 아냐. 지나친 상술이 문제라는 거지."

한의원이나 병원에서 권하는 아이를 위한 보약은  세상 모든 부모들의 '희망고문'과도 같다. 

내 아이가 키가 크고 튼튼해지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나?

보약은 아이를 위해 뭐든 해주고 싶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다. 

특히 평소에 아이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고, 매끼 영양가 있는 밥을 해먹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부모들에겐 '보약'이야말로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보약을 해먹이고 부모는 '내 아이를 위해서 나는 할 만큼 했다'라고 하는 자기 위안에 빠지기 쉽다. 

그럼 결국 그 보약은 엄밀히 말해서 아이를 위한다기보다는 부모의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희운이 보약을 해먹이지 않기로 했다. 

그럼 어머니가 주신 돈은 어디에 쓰나? 

쓸 데는 엄청 많지. 남편은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게 남는 거란다. 

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돈을 그렇게 쓰면 왠지 시어머니께 죄짓는 것 같다. 

그래, 그 돈으로 남편에게 보약을 해먹이자! 

에너지가 넘치고도 넘치는 아들 녀석보단 수많은 일거리와 스트레스로 부쩍 골골거리는 남편에게

보약 한 재 해먹이는 게 더 남는 일 아니겠나. 

물론 시어머니도 당신 아들에게 보약 해줬다는 데 뭐라 하지 않으시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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