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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Sep 07. 2016

아이의 효자손

내 남편의 육아법


"엄마, 등 긁어줘." 

잠들기 전 녀석이 이런 부탁을 한 지는 꽤 됐다. 거의 한 1년은 된 것 같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잠들 때까지 긁어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솔직히 한숨부터 난다. 

머리부터 등, 옆구리, 엉덩이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구석구석 구체적으로 주문하시는데

졸려서 조금이라도 동작이 느려지면 "엄마, 다시"를 연발하는 녀석 때문에 팔 떨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낸 게 효자손이었다. 효자손을 사주면 녀석이 혼자서도 등을 긁을 수 있겠지!

하지만 녀석은 효자손을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엄마, 등 긁어줘~." 

녀석에게 효자손 사용법을 시연해줘도 소용없다. 하긴, 엄마손만큼 시원하게 긁히지 않겠지.

효자손으로 가만가만 긁고 있으면 녀석도 쥐 죽은 듯 가만히 누워있다. 

잠들었나? 싶어서 긁는 걸 멈추면 어김없이 명령(?)이 떨어진다. 

"계속 긁어줘. 잠들 때까지 긁어줘."

"희운아, 엄마 팔 아파. 열 번만 긁어주고 그만이야."

"싫어, 숫자 세지 마. 계속 계속 긁어줘. 많이 많이 긁어줘." 


녀석이 저렇게 등 긁는 데 집착(?)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등이 가려워서 그러나? 목욕탕에 가서 때수건으로 등을 박박 밀어 보기도 하고

등이 건조해지지 않게 로션도 듬뿍 바르고 심지어는 등판을 찰싹찰싹 때려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싫다고 울고 소리 지르고 짜증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녀석과 실랑이를 하면서 밤마다 소가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억지로 등을 긁어줬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사실은 어젯밤), 드디어 난 녀석이 등 긁기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아내고 말았다!


"엄마, 내가 등 긁어줄까?"

어젯밤 녀석은 내가 숫자도 안 세고 한참을 긁어주니 기분이 좋았던지 처음으로 먼저 기특한 제안을 했다. 

어이구,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옆으로 누워 등 대고 있으려니 살살살~ 간질간질~한 느낌이 온다. 

녀석의 효자손이 스칠 때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등 전체에 퍼져간다. 

"아, 좋다. 등 긁어주니까 기분이 좋아지네. 이래서 희운이가 만날 등 긁어달라고 했구나?"

그러자 녀석이 바로 그거라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등이 가려워서 그런 게 아니라 참 기분이 좋아져서 등 긁어달라고 한 거야."

아하! 그랬던 거구나. 나는 지금까지 순전히 등이 가려워서 긁어달라 한 줄 알았는데...

지난 1년 여 동안 어쩜  그리 까맣게 몰랐을까? 

등 긁어주는 게 귀찮고 힘들어서 녀석에게 짜증도 많이 냈는데. 그때마다 희운이 기분이 어땠을까?

아이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는 녀석이 그동안 "등 긁어주면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한테 자꾸 긁어달라고 했던 거야"라는 

정확한 의사표현도 못하고, 마냥 '긁어달라'고만했던 거다. 

엄마인 나는 '긁어달라'는 그 간단한 한 마디에서 아이의 숨겨진 진심을 파악했어야 했다. 


때론 이유 없이 울고, 짜증을 부리는 아이에게 나는 언제나 다그쳐왔다. 

"울지 말고 똑바로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지만 어젯밤 효자손 마사지를 받으면서 그런 말이 아이에겐 너무 어렵고 벅찬 과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운이가 또래보다 말을 똑 부러지게 하고 잘한다고 생각해서 이젠 웬만한 의사표현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조차도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말은 할 줄 아는데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의 문을 닫고 말을 아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희운이가 뭘 원하는지를 좀 봐. 당신 말만 하지 말고. 아이가 하는 말을 먼저 들어줘." 

늘 남편이 내게 했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아이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게 어떤 건지, 

남편이 출장 가고 없는 날 밤에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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