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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Nov 30. 2016

만추의 낭만

내 남편의 육아법

어느새 11월의 마지막 날. 

잎사귀가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는 안쓰럽지만 땅은 낙엽으로 풍성하다. 

낙엽은 아이에게 더없이 좋은 놀잇감이다. 

11월 언제였나... 간만에 하늘은 맑고 햇살이 따사로웠던 어느 주말, 

아이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시소 한쪽 옆에 수북이 쌓인 빨강 단풍잎을 발견했다. 

"우와~ 이쁘다~"

나는 냉큼 붉은빛이 채 메마르지 않은 단풍잎을 두 손 가득 들어서 녀석의 머리 위에 뿌려댔다. 

"우와~ 산이다, 산!"

녀석은 수북이 쌓인 낙엽이 마치 작은 산처럼 보였는지 시소 위에 올라가서 그 위로 점프한다. 

곧 가운데가 움푹 꺼지고 낙엽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신이 난 아들 녀석이 한 대여섯 번쯤 

같은 동작을 반복할 무렵, 비로소 흩어진 낙엽 속에 숨겨진 담배꽁초와 휴지 더미, 껌종이 등 

온갖 쓰레기들이 뒤늦게 정체를 드러낸다.

 이럴 수가, 이렇게 더러운 게 많은 줄 알았으면 만지지도 말 걸! 

하지만 이미 신날 대로 신나 단풍잎처럼 양볼이 발갛게 상기된 녀석에게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하기도 참 애매하다. 게다가 시작은 내가 먼저 해버렸으니....

'까짓 거, 쓰레기가 뭐 대수냐. 실컷 놀고 집에 가서 씻기면 되지.'

나는 눈에 띄는 담배꽁초랑 휴지들을 눈치껏 치워가며 다시 단풍잎을 모아주었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에 저토록 몰입하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럴 땐 내가 깔끔 떨지 않는 엄마여서 좋다. 정리정돈과 거리가 먼 집구석에,

설거지 거리는 (우리 시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처 담가놓기 일쑤요,

귀찮으면 아이 목욕도 2~3일은 우습게 패스해버리는 나. 

한 번은 남표니가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희운이를 위해 유일하게 잘하는 게 청소 잘 안 하는 거야."

"왜?"

"아이가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라야 면역력이 생기니까."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를 남편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이날 녀석과 원 없이 낙엽 놀이를 했다. 

깊어가는 가을의 추억을 한 장 사진으로 남기고, 나는 힘들게 낙엽을 쓸어 모은 경비아저씨를 위해 

낙엽을 다시 원래대로 해놓고 집에 와서 아들 녀석을 오랜만에(!) 씻겼다. 아, 상쾌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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