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마워요
"희운아, 이것 봐. 밤새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봐!"
"어? 그러네! 와~ 산타 할아버지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오던 녀석이 선물을 발견하고 좋아한다.
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선물 포장을 뜯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8살 때, 광주 외가에 맡겨져 학교를 다녔던 나는 자연스레 외가 근처에 살던
둘째 이모네 한 살 터울 사촌 언니와 친구처럼 어울려 지냈는데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던 사촌 언니와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나는 가진 것이 부족했다.
옷도 그렇고, 학용품도 그렇고, 책이나 장난감도 그렇고...
언니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다름 아닌 '크레파스'였다.
내가 가진 크레파스는 어린 내 눈에도 어디 내놓고 쓰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특히 자주 쓰는 빨강이나 초록, 파랑은 갈색이나 남색, 검정보다 반 이상 키가 작았고
그나마도 없는 색깔 투성이었다.
언니의 크레파스는 달랐다. 색상이 무려 50가지나 되어서 같은 빨강이라도 색이 여러 가지였다.
진한 빨강, 다홍색, 자주색, 분홍색... 빨강이 그토록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언니의 크레파스에 비하면 내가 가진 몽당 빨강 크레파스는 얼마나 초라했는지...!
크리스마스 날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막내 이모가 안방 마루밖에 세워둔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리켰다.
"와, 밤새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네? 우리 숙영인 좋겠다!"
이모가 가리킨 곳엔 작은 네모 상자가 놓여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풀어보니,
그 속엔 신기하게도 크레파스가 들어있었다. 그것도 무려 24가지 색상의 크레파스가!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건가?
내가 크레파스를 갖고 싶어 한 건 어떻게 알았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뻐하는 나의 표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막내 이모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얼굴이,
그날의 행복했던 추억과 함께 하고 있을 뿐.
어느새 아들 녀석이 장난감을 쥐고 나에게 다다다다 달려온다.
"엄마, 이것 좀 봐! 멋지지?"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대꾸해주었다.
"우와~ 정말 그러네!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신기하다. 희운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