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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Dec 09. 2016

뭐든 잘 먹는 아이

내 남편의 육아법

며칠 전부터 불고기 피자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녀석을 위해 

오랜만에 '엄마표 피자'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아들 녀석은 윗집 형, 누나 집에서 놀게 하고 집에서 혼자 느긋하게 불고기를 볶고

파프리카, 양파, 당근... 집에 있는 채소도 잔뜩 채 썰어 넣고 치즈 듬뿍 뿌려서 오븐에서 구워냈다. 

'띵~!' 피자가 다 구워졌음을 알리는 오븐 소리와 동시에 초인종이 울린다. 

"엄마, 피자 다 됐어?"

녀석이 윗집 형, 누나, 친구까지 우르르 데리고 왔다. 분명 엄마가 불고기 피자 해준다고 자랑한 게 틀림없다. 

"그럼~ 이럴 줄 알고 두 판이나 만들었지~."

"우와~~!"

아이들이 저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귀여운 녀석들, 많이 먹으렴.

기대에 잔뜩 부푼 녀석들을 위해 서둘러 한 조각씩 잘라서 줬는데 막상 피자를 본 녀석들,

어째 우리 희운이만 빼고 반응이 떨떠름하다. 접시를 앞에 두고 멀뚱멀뚱, 손도 안 댄다. 

"얘들아, 왜 안 먹어?"

제일 먼저 희운이랑 동갑내기인 여자애가 빨강 노랑 파프리카 조각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야채가 너무 많아요."

불고기도 많다고 얘기해줘도 도리도리, 먹지 않겠단다. 그 모습을 본 6살짜리 여자애가 덧붙인다. 

"원래 얘는 야채 안 먹어요."

그 옆에서 제일 큰 놈인 9살짜리 남자애는 불고기 하고 치즈만 골라먹고 양파며, 파프리카는 

손으로 떼어내고 먹고 있다. 

"OO아, 너는 왜 채소 안 먹어?"

"저도 이런 거 싫어해요. 고기만 좋아요."


채소 싫어하는 애들이 많다고 들었지만 막상 그런 애들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애써 만들어줬더니 먹지도 않아서 속상한 건 둘째치고 5살, 6살, 9살짜리 애들이면 어느 정도 

식습관이 잡힐 나이인데도 편식이 심해서 적잖이 놀랐다. 

우리 희운이도 잘 안 먹으려고 하는 음식이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이제 보니 우리 애는 양반이었다. 

"이모~ 다른 거 먹을 건 없어요?"

5살짜리 여자애가 슈렉의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그걸 보자니

배고플 텐데 다른 거라도 챙겨줄까? 주먹밥이라도 해줄까? 마음이 마구 약해진다. 

하지만 안 돼. 이러면 아이의 식습관만 더 나빠질 뿐이야.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최대한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먹을 건 안 돼. 야채가 싫다고 네가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순 없어."

내 말에 아이는 실망한 듯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이 못내 짠했지만 어쩌랴... 

우리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외면 받은 피자... 슬프다. 


희운이가 4살 때인가? 애써 저녁밥을 차려줬는데도 자기가 먹고 싶은 반찬이 없다며 투덜대기에 

우리 남편이 그 자리에서 식판을 치워버린 일이 있었다. 나는 계란 프라이라도 해줄까 싶었는데 

남편은 절대 해주지 말라고 했다. 배고플 텐데... 괜찮을까? 속으로만 안절부절 눈치를 보는데 

아니다 다를까, 9시가 넘어서 녀석은 배가 고프다고 밥 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라도 먹이자 싶었는데 남편은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나왔고

녀석은 그때부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 배고파. 밥 주세요~ 엉엉~~"

굶주림에 우는 자식을 보는 아프리카 엄마의 심정이 이럴까?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 

"안 돼. 엄마 아빠는 아까 저녁 먹으라고 했고, 이때 안 먹으면 나중에 밥 안 준다고 분명히 말했어. 

배고파도 어쩔 수 없어. 내일 아침에 밥 먹어."

희운이는 아빠의 단호한 말에 한참을 울다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들었다. 

애한테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닐까?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부모가 단호하게 나오면 아이의 나쁜 버릇이 고쳐질 수 있다고 하면서 걱정 말라고 했다. 

다음 날 희운이는 우리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일찍 일어나서 여느 때보다 아침밥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론 제때 밥을 안 먹는 행동도, 반찬 투정도 하지 않는다. 


그때 눈 딱 감고 딱 한 번만 세게 나간 게 효과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는 이제 어딜 가더라도 '주는 대로 잘 먹는 놈'이 되어 뭇 엄마들에게 예쁨 받고 있다. 

많은 엄마들이 나한테 물어본다. 어떻게 희운이는 이렇게 뭐든 잘 먹어요?

그래서 '눈 딱 감고 한 번만 굶기세요' 하며 경험담을 얘기했더니 다들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뭐, 이해한다. 이런 훈육법이 모든 아이에게 통하란 법은 없으니까.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아이의 올바른 식습관을 위해 우리 남편이 늘 강조하는 게 있다. 

반찬을 3가지 이상 꺼내지 말 것. 

전라도 출신인 친정 엄마의 영향으로 난 최대한 반찬을 많이 꺼내놓고 먹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남편은 그걸 질색하곤 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한테'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잘' 먹이고 싶어서 

이것저것 꺼내놓는데 그거야말로 오히려 편식을 부추기는 행동이라는 거다. 

아이는 그 많은 반찬을 다 먹을 수도 없거니와, 그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먹기 십상인데

그걸 옆에서 보는 엄마는 골고루 먹지 않는다고 타박하기 일쑤라며.  

그럼 아이는 식사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식사 자체를 거부하게 될 수도 있다. 

뭐든 골고루 잘 먹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3살 때까지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최소한으로 주면서 먹는 즐거움부터 깨닫게 해 주고 

4살부터는 찬의 종류를 조금씩 바꿔 가면서 다른 식재료를 경험할 기회를 주면 된다. 


'불고기 피자'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식습관을 잘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우리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은 아니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식습관만큼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하는 습관이기에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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