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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영낭자 Dec 23. 2016

아이의 놀 권리

내 남편의 육아법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인 쌀놀이

집에 마침 쌀이 똑 떨어져서 백미 하고 현미 두 가지 쌀을 주문했다. 

작년 여름 쌀벌레가 생겨 아까운 쌀을 반 이상 버렸던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엔 쌀을 뜯자마자 페트병에 옮겨 밀봉하기로 했다. 

쌀 포대를 뜯는 날 보더니 아들 녀석이 자동차 놀이를 하다 말고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 쌀 놀이할 거야?"

"으응? 쌀 놀이?"

온 바닥에 흩어질 쌀알들과 그 한가운데서 신나게 쌀을 흩뿌리며 헤엄칠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다.

예전에 희운이가 어릴 때 몇 번 '오감놀이'랍시고 해줬다가 아주 난장판을 해놔서

다신 쌀 놀이 같은 거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던 터... 

'안 돼'라고 하려다가 벌써부터 양손에 플라스틱 컵을 쥔 채 간절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는

녀석을 보고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그래, 내가 귀찮다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못하게 하지는 말자. 

"그래, 쌀 놀이하자."

"오예~!" 

녀석은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쌀포대에 얼굴을 처박다시피 하며 쌀을 열심히 깔때기에 부어댔다. 

촤르르~~ 경쾌하게 페트병 바닥에 쏟아지는 쌀알 소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까끌까끌한 감촉을 즐기며 기꺼워하는 녀석. 

그렇게 내버려두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음식물 분쇄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소리칠 녀석이 

쌀 놀이에 흠뻑 빠져서는 찍소리도 안 한다. 완전히 몰입한 것이다. 


나는 언제 저렇게 몰입해본 적이 있었나? 

뭔가에 흠뻑 빠져서 주위의 것은 일체 신경도 안 쓰는 저 무아지경의 경지라니!

아이들의 놀이란 이래서 대단한 거구나. 

내심 녀석이 부럽기도 하고, 

다시 한번 관대하게(?!) 쌀 놀이를 허락한 나 자신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우리 부부가 모든 놀이를 다 저렇게 관대하게 허락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희운이의 놀이가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게 볼풀공 놀이, 모래 놀이, 그리고 쌀 놀이다. 

지난여름 올림픽 중계 때 수영 경기를 유심히 보던 녀석이 날이면 날마다 볼풀공 텐트에 들어가

수영한답시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온 집안에 볼풀공이 흩어져서 주워 모으느라 힘들었고,

어린이날 선물로 내 동생이 사준 모래 장난감은 특유의 끈적끈적한 성분 때문에 하고 나면 

씻기느라 애를 먹었다. 바닥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희운이가 그런 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면 다른 놀이로 유도하거나 

짐짓 못 들은 척 딴청 피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저렇게 좋아하는 놀이인데, 단지 우리가 치우기 귀찮다는 이유로

원하는 놀이를 못하게 막을 권리가 있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치우기 힘들다'라고 못 놀게 하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놀이의 원칙을 세웠다. 

본인에게 위험하거나 함께 노는 다른 친구에게 해를 끼치는 놀이가 아니라면 모두 허락해주자. 

아이에게 놀이는 엄연한 '권리'이므로. 

아이와 함께 놀아주지는 못할 망정 아이가 원하는 놀이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건 부모의 지나친 이기심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어제 쌀 놀이는 참 좋았다. 

뜻밖에도 녀석이 뒷정리까지 함께 해줘서 폭풍 칭찬해줬다. 

한동안 옷장 속에 꽁꽁 숨겨놓았던 볼풀공을 다시 꺼내야 할까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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