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숙영낭자 Jan 10. 2017

채움보다 비움

결핍이 아이를 충만하게 한다

자기들만의 규칙을 정해서 노는 아이들 


길고 긴 유치원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하루가 평소보다 2~3배로 길어지는 것 같다. 

종일 아이와 집에서 뒹굴거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관지가 약한 녀석을 데리고 

추운 바깥에서 시간 보내기도 부담스럽다. 

이럴 땐 널찍한 실내놀이터만 한 곳이 없다. 마침 집과 가까운 킨텍스에서 놀이 체험전이 열려서 

친한 언니네랑 의기투합해 온 가족이 출동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아기 때부터 친구였던 두 녀석 , 어릴 때는 투닥거리기 일쑤 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부딪히는 횟수가 줄어들어 기특하다. 


두 녀석이 공통으로 관심을 보인 건 여러 가지 자석 블록을 조립해서 구슬을 굴리는 교구체험이었다. 

그런데 이 놀이의 핵심도구라 할 수 있는 구슬이 한 개밖에 없었다. 

어릴 적에 싸구려 장난감 하나를 두고도 서로 갖겠다고 으르렁거리던 녀석들이 아니던가! 

구슬을 서로 갖겠다고 또 싸우면 어떡하지? 

교구체험 담당 부스에 가서 구슬 한 개를 더 빌려올까?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날 보던 남편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란다. 

"왜? 둘이 구슬 한 개씩 갖고 놀면 좋잖아."

"냅둬봐. 구슬이 한 개밖에 없으면 지들끼리 알아서 놀겠지."


과연 그럴까? 불안한 마음 반, 미심쩍은 마음 반으로 지켜보니 과연 남편 말이 맞았다. 

녀석들은 나의 예상과는 달리 구슬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기는커녕 

"너 구슬 두 번 굴리고 그다음에 내 차례야."

자기들 나름대로 규칙까지 정해놓고 노는 게 아닌가?

순간 아이들을 못 믿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이들은 잘 놀게 되어 있어. 100% 완벽하게 다 갖춰주려고 하지 마."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옛날 서울의 반지하 월세방에 살았던 생각이 났다. 

녀석들이 한 살, 두 살 때는 딱히 장난감이랄 게 없었다. 

형편이 빤해서 비싼 새 장난감 사줄 엄두를 못 냈고 중고나라에서 구하거나 

그도 아니면 집안 살림살이를 쥐어주고 놀게 했다. 


아기 때 녀석들의 장난감은 주방도구였다


손에 쥔 게 거품기, 주걱, 숟가락 같은 거였지만 녀석들은 그걸 가지고 냄비 뚜껑을 두들기며 잘도 놀았다. 

손에 잡히는 게 다 장난감이고 눈에 보이는 게 다 놀잇감이었을 시절,

그땐 뭔가를 가득 채워주지 않아도 충분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물론 좀 컸다고 카봇이니 터닝메카드니 사달라고 노래를 부를 때도 있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저 혼자 놀잇감을 찾아서 잘 놀았고 지금도 각티슈 하나만 있으면 

마구 뽑으면서 즐거워하고 얇은 이불 하나만 있으면 이불 썰매를 끌며 신나 한다. 


내 아이를 다른 어떤 아이보다도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커져서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뭔가를 채워주려고 하는 건 욕심인 것 같다. 

내가 만약 두 녀석에게 각각 하나씩 구슬을 쥐어줬다면, 

녀석들은 '두 번씩만 구슬 굴리고 양보하기'라는 자기들만의 놀이규칙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때론 부모의 지나친 욕심 내지는 간섭이 오히려 아이의 자율적인 놀이와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남편은 '채움보다 비움'을 강조한다. 때론 결핍이 더 아이를 충만하게 만든다고. 

그리고 우리가 '결핍'이라 생각하는 것도 순전히 부모만의 생각일 뿐이다. 

아이는 장난감이 부족해서 결핍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모의 관심이 부족할 때 결핍을 느끼는 법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EBS '부모' 볼 시간에 애를 더 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