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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Dec 24. 2023

브런치 견문록

이불 밖은 위험해? 내 브런치 밖은 더 위험해!

저는 글을 쓸 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가끔 찾아오는, 마치 미리 준비된 것처럼 이야기가 술술 써지는 날의 마법 같은 시간을 좋아하고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앉아 안개 같은 머릿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시간들을 사랑합니다.

모두 '나'로 오롯이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브런치에 나만의 동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꽤 즐겁습니다.

제 눈엔 매 순간 반짝거리는 두 아이들과 늘 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동화로 동굴을 쓸고 닦고 채워 넣고.

제 맞춤 동굴이라 제 눈엔 반짝반짝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브런치북 하나를 발간하고 나니 주위를 좀 둘러볼 여유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동굴을 짓고 있지?'

여유가 생기니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브런치 마실을 나가봅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 처음 상경한 심정이 이런 걸까요?

온갖 향을 내뿜는 글들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절로 벌어집니다.

딱딱한 전문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글, 어려울 수 있는 역사를 생생하게 풀어내는 글, 누구에게나 똑같은 일상을 감칠맛 나게 표현해서 특별하게 만드는 글, 아픔을 글로 꺼내어 함께 나누며 스스로 더 단단해지고 읽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

해도 나고 구름도 끼고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눈도 내리는 그런 글. 글. 글... 글들.


입을 헤 벌리고 '우와' 소리가 절로 나게 하는 글들을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클릭을 멈췄습니다.

가슴이 덜컥했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바다구나. 이런 글의 바다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내 동굴이 세상의 전부인양 즐거웠는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나는,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거지? 누군가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고 있는 건가?'


생각들이 연이어 꼬리를 물고 올라옵니다.

더는 마실을 이어갈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위협을 감지한 아이가 그러하듯 재빨리 가장 안온한 내 동굴로 후다닥 돌아왔습니다.

헌데, 이런. 이런!

돌아온 내 동굴이 더 이상 반짝이지 않습니다.  너무 큰 세상을 보고 온 후유증일까요?  

늘 따뜻하고 반짝였던 공간이 작고 초라한, 무채색으로 생기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가만히 내 위치를 가늠해 봅니다.

'이 글의 바다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멸치? 새우? 아니. 아니. 플랑크톤. 그래. 이 글의 바다를 부유하는 플랑크톤 정도 되겠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지만 바다 생태계에 꼭 필요한 영양분 플랑크톤.

그리고는  스스로 다독이며 다짐해봅니다.


나는 존재감은 미미하지만 이 글의 바다를 풍성하게 살찌우는 영양분이 되어봐야지.

나 스스로를 살찌우고 내 글을 읽는 또 다른 플랑크톤이나 멸치, 새우, 고등어, 참치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는 플랑크톤이 될 거야.

나만의 향을 폴폴 풍겨서 어느 날엔, 고래상어도 '그래, 그 동굴엔 마음을 울리는 좋은 향이 나는 플랑크톤이 살고 있지.' 하고 기억해 주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뭐, 모든 일은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한참 움츠러 있던 마음이 조금씩 펴져 갑니다.

다시 고개를 들고 내 동굴을 둘러봅니다. 아담하고 따뜻한 동굴이 늘 그렇듯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놀란 마음이 좀 더 가라앉고 나면 다시 제 눈엔 너무나 반짝이는 아이들과 동화로 채워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런치 마실은 제게 많은 잔상을 남겼습니다. 

즐겁고 눈부신, 하지만 조금은 혹독했던 첫 마실.

두 번째 마실은 제가 좀 더 다듬어진 후에, 고등어나 참치의 글에서 흔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장점을 배워올 정도로 제 글의 기본이 단단해졌을 때나 감행해보려 합니다.

그때까진 제 동굴을 열심히 쓸고 닦아야겠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해요?

내 브런치 밖은 더 위험해요!



덧붙이는 감사 하나. 

브런치 마실을 다녀온 후에야 이 글의 바다에서 고작 '플랑크톤'인 제 글을 읽으러 와주시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은둔형 동굴살이를 좋아하는지라 일일이 찾아뵙지 못하지만 제 브런치에 글을 읽으러 와 주시는 분들께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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