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혜은 Sep 08. 2024

축구연습경기

우물 안 개구리

아이가 다니는 축구 아카데미의 중등부 연습경기가 있는 오늘.


 : 유니폼, 축구화, 신가드, 축구양말.

하나하나 꺼내놓는 아이 목소리에 힘이 팍 들어가 있다.

"아, 나 골 넣을 것 같은데."

표정은 이미 넣은 듯 뿌듯하다. 

그래, 상상이야 뭐.


 :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아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신생아카데미에, 중등부는 연습경기 가능 할 정도의 인원이 채워진지 이제 겨우 몇 개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을 열정적으로 다니긴 하지만 '열정'만 빛나는 단계다.

뭐, 아이 마음속엔 본인이 손흥민이고 홀란드이지만.


 : "연습경기니까 그냥 편하게 하고 와."

대진상대인 상대팀의 전력을 본다며 찾아보던 아이는 상대팀의 많은 우승트로피를 보고 기가 좀 죽은 느낌이다. 비록 객관적인 실력은 떨어지는 게 맞지만 그래도 시작도 전에 기가 죽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곤란한 거 아닐까. 시합은 '기세'니까.

"어차피 다 동네축구야. 거기서 거기라고. 너네 팀은 경기에 나간 적이 없으니까 트로피가 없는 것뿐이야."

아들 녀석 표정이 좀 풀린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 습도는 낮지만 해는 쨍한 한 낮.


 : 경기가 시작됐다. 

총 6세트. 7대 7로 진행된다고 한다. 지켜봐도 되지만 아이만 데려다주고 끝날 때쯤 오겠다며 팔랑팔랑 손 흔들며 뒤돌아섰다.

본인은 손흥민인 줄 알지만 평범한 십 대인  '김우주'의 실체를 깨닫는 시간은 아이 홀로인 게 더 낫지 않을까.


 : 기가 쪽 빨린 채 아이가 차에 오른다. 

경기 스코어 6 - 3. 

머리부터 퉁퉁 부은 발까지. 땀에 절은 아이는 답지 않게 조용하다. 그렇다고 엄청 실망하거나 축 처진 건 아닌데 그저 조용하다. 그러더니 한마디 툭 뱉는다.

"대회는 좀 아닌 것 같아요." 이달 말에 예정되어 있는 작은 지역대회를 말하는 거다. 실력차를 몸으로 느낀 탓일까. 너무 기가 죽었나 살짝 걱정이 되는 데 따라붙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또 하고 싶다."

그래. 그래. 재미를 알면 됐지. 첫술에 어떻게 배부르겠어. 

우물 안을 살짝 벗어나 본 아이의 땀방울이 빛나는 날이다. 

반짝반짝. 시큼한 땀냄새에도 지지않고 여전히 반짝여서 더 눈부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룡의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