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 그림처럼 예쁜 하늘을 보다가 더 예쁜 누군가가 생각났다.
떠오르자마자 눌러보는 전화. 반가움이 터져 나온다.
미주알고주알 아이처럼 수다 터진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는 아빠의 변비가 재발했다는 소식.
럼 : 럼주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한국술들을 적당히 애정하시고 건강한 음식, 운동, 친목활동까지.
건강한 노년의 표본 같았던 아빠를 보며 '질병 없는 100세 맞기'를 의심치 않았었다.
전립선암과 일부 전이라는 소식을 듣기 전까진.
그 막막했던 시간들을 잘 견뎌내신 아빠는 일상을 돌려받았지만 똑같은 일상은 아니다.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드셔야 하고 그 결과 만성적인 변비를 선물 받으셨다.
엄마 말을 듣자마자 고작 배변활동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빠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응급실을 향하던 모습까지.
손가락이 자연스레 '아빠'를 누른다.
잘 : "잘 지내시죠?"라는 어색한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는 사람. 한결같은 아빠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흐른다.
"어, 어, 딸!"
반가움 담뿍 담긴 목소리에 나 역시 애교 듬뿍 담아 건네본다.
"아빠, 뭐 해~~~?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빠 생각나서 전화했지~."
미주알고주알 부녀간에 터진 수다가 길어진다. 그러다 마지막에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 묻는다.
"아빠, 별일 없지?"
"어, 그럼 별일 없지. 잘 지낸다."
변비는 좀 어떠냐는 물음은 꺼내지 않았다. 긴 수다 중에도 대화에 오르지 않았다는 건 굳이 말 꺼내어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아빠 마음.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아는 척하지 않는다.
이번엔 질문이 돌아온다.
"너도 별일 없지?"
"아이, 그럼.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
쨍한 내 대답에 아빠의 너털웃음이 돌아온다.
'아빠, 사실 이랬어. 저랬어.' 속상하고 힘든 일들을 단어 사이에 꼭꼭 숨겨 말하지 않기 시작한 건 부모님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던 어느 순간부터.
마찬가지로 아빠에게서 아빠의 '힘듦'을 건네 들으려면 나는 태산같이 큰 딸이 되면 되려나.
격하게 그런 딸이 되고 싶다.
지 : 지금부터 또 부지런히 찾아본다. 변비에 좋은 것들.
내 :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의 일들을 그저 해본다. 그러다 보면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이 일들도 언젠가 좀 더 수월하게 넘어가는 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
지 : 지금 이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 낼 좀 더 편안한 날들을 그려보며.
"그럼, 잘 지내지!"에 담긴 마음을 꼭꼭 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