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음을 담아요
김철수! 이철수! 최철수! 박철수!
김영희! 이영희! 최영희! 박영희!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6학년 철수오빠의 목소리가 하얀 입김 사이로 쨍하니 터져 나온다. 답하는 목소리와 와글거리는 수다가 섞여있는 여기는 우리 동네 성황당 앞이다.
오늘은 2주에 한 번씩 하는 '마을 정화 활동'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6학년부터 1학년까지 동네 아이들 다 모였다. 6학년 철수 오빠가 선생님 대신 출석을 부르니 일요일인데도 학교에 온 것 같다. 일요일 아침부터 청소하러 모여야 하는 것도 귀찮은데 하필 오늘은 성황당 청소다. 멀리서 성황당 기와만 보여도 고개를 돌리거나 더 먼 길로 돌아가는 나에게 성황당 청소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안 할 수도 없고 하려니 무섭고. 그저 언니 오빠와 친구들 사이에 묻혀서 얼른 끝내고 싶다.
우리 마을은 어른들 대부분이 고기잡이를 하는 작은 어촌이다.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고 밭농사를 짓는 집도 있지만 주업은 어업이다. 그래서일까. 동네 가운데엔 바다신에게 무사귀환을 비는 성황당이 있다.
반듯하고 촘촘하게 올라간 기와 아래 여러 화려한 색깔로 칠이 되어 있는 성황당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여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지만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서늘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수많은 괴담이 따라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해야 하는 일이라 마지못해 나오긴 했지만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출석 확인이 끝나길 기다리는데 성황당 제사를 맡아서 주관하는 집 딸인 영희가 얼른 곁에 와서 선다.
"있잖아, 어제 울음소리 들었어?"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다. '안 들려. 안 들려.'를 외치며 귀를 틀어막고 싶지만 내 귀는 어느새 영희 목소리에 레이더를 쫑긋 세운다.
"무슨 울음소리?"
옆에 있는 아이들 모두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영희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늘 괴담과 연관되어 있으니 무섭지만 궁금한 그 마음 이해한다.
"어젯밤 12시에 아기 울음소리가 자꾸 들리는 거야. 아무도 못 들었어?"
다들 눈 동그랗게 뜨고 고개만 가로젓는다.
"계속 우는 소리가 나서 우리 엄마가 나가 봤는데 아기는 없는데 자꾸 소리가 났대. 그래서 소리가 나는 걸 따라서 갔더니 여기 성황당이었대."
헉!!!!! 뭐야, 너무 무섭잖아.
입이 절로 벌어져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귀를 틀어막았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얘기를 들은 몇몇 영희들이 불안한 눈으로 성황당을 돌아보는데 정신 차린 똑순이 영희가 말한다.
"고양이 울음소리 잘못 들은 거 아냐? 고양이들이 밤에 울면 아기울음소리처럼 들려."
'아, 맞아. 맞아.'
우리 모두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지만 괴담영희는 강력하다.
"아냐, 분명해. 그래서 바다신이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거라고 제사 지낼 때가 안 됐지만 성황당에 제사를 미리 지낸다고 했어."
헉. 뭐야. 그러니까 진짜로 진짜인 것 같잖아.
확인할 수 없는 사실에 더 꺼림칙해진 성황당에서 크게 한걸음 물러서는데 6학년 철수 오빠가 청소 구역을 정해주기 시작한다.
봄, 여름, 가을엔 성황당 안쪽과 바깥쪽 진입로를 빗자루로 쓸고 쓰레기 줍고 마당에 자라는 잡풀을 뽑아내는 게 주요 일이지만 겨울엔 사실할 일이 별로 없다. 풀이 없으니 그저 쓸고 줍기만 하면 된다. 학년별로 위치를 정해주려는 철수 오빠에게 얼른 달려간다.
"오빠, 할 일 별로 없으니까 남자, 여자로 나눠서 하면 안 돼? 여자들이 바깥 청소 할게."
우리 집이랑 담장 하나 사이로 붙어있는 옆 집에 사는 6학년 철수오빠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보던 사이다. 그러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 한다. 간절한 내 눈빛이 통한 걸까. 오빠는 흔쾌히 그렇게 정해준다.
구역이 정해지자 철수들은 모두 성황당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고 영희들은 성황당 입구부터 진입로를 쓸며 쓰레기를 줍는다.
청소하다 보니 제사를 주관하는 영희네 아빠가 오신다.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 중이던 아기울음소리가 또 생각났다. 쭈뼛거리며 인사드리니 환하게 받아주신다. 콩닥거리던 마음이 좀 진정되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성황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호통이 터져 나온다.
"이 녀석들, 어서 내려오지 못해."
소란에 외면하고 있던 성황당을 쳐다보니 동네 철수들이 전봇대에 앉은 참새처럼 성황목(신목)에 조르르 앉아 놀고 있다. 저 강심장들 같으니라고!
아이들 셋은 팔 벌리고 서야 할 만큼 튼튼한 몸통을 자랑하는 성황목은 신기하게도 위로 자라는 대신 옆으로 자라고 있다. 몸통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 대여섯은 앉아서 놀아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한 옆가지를 자랑해서 가끔 겁 없는 철수들의 놀잇감이 되곤 한다. 아저씨 등장에 우수수 뛰어내린 아이들이 혼나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린다.
다시 성황당을 외면한 나는 비질을 한다. 그리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성황신에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저 철수들 용서해 주세요.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요.'
'아기 울음소리 아니죠? 그냥 고양이라고 믿을게요.'
내 마음대로 단정 지으며 비질을 하는데, 평소 미신이라고 안 믿는다고 큰소리쳤지만 내 안 어딘가에 숨어있던 '어쩌면...' 이 괴담을 따라 비질을 타고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담는다.
'우리 집에도 배 있는 거 아시죠? 우리 아빠 무사히 고기 많이 잡게 해 주세요.'
되는대로 마구 쓸어내던 비질소리가 슥슥. 삭삭. 정갈해진다.
신성하게 여겨지지만 무섭기도 하고 청소하는 날이 되면 귀찮기도 한 곳.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우리 동네 성황당은 오늘도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