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시간은 일정하게 흐른다. 이 말은 객관 사실로서는 맞고, 주관 경험으로는 틀리다. 반복되는 일과를 수행할 때는 아주 천천히 흐르더니, 여행이라도 갔다 하면 순식간에 지나간다.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안다. 고대 그리스인도 이 사실을 알았다. 그들에게 시간을 뜻하는 단어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크로노스로 물리적으로 정확하게 측정 가능한 시간이며, 두 번째는 카이로스로 내가 경험하는 주관적인 시간을 말한다. 크로노스는 시계 초침처럼 흘러가고, 카이로스는 우리의 심장 박동처럼 흐른다.
우리는 크로노스를 살면서 카이로스를 인식한다. ‘시간’이라는 단어에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담겨있다. 시간에서 ‘간’은 사이 간(間)이다. ‘사이’라는 말은 두 지점이 존재할 때 성립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단일한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시간 세계에서 두 지점은 처음과 끝이라는 속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간(時間)은 처음과 끝을 포함한다. 우리는 처음과 끝을 포착하고 둘을 비교해서 그 사이를 인식한다. 크로노스 세계에서 처음과 끝의 간극이 길다 하더라도, 둘을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크지 않다면, 우리는 그 사이를 짧다고 인식해 버린다. 그래서 어린이의 시계보다 어른의 시계가 빠르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새 2-3년은 금방 지나버린다.
고등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3년 만이다. 친구는 SNS활동도 잘하지 않아 3년 동안 업데이트 된 소식이 없었다. 고등학생 땐 1년간 같은 방을 썼던 기숙사 룸메였다. 다른 대학이었지만 2년은 함께 자취했다. 같이 살던 때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시간 내어 나눌 필요가 없었다.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고민은 무엇인지 등은 -그냥- 알았다. 대학생일 때는 떨어져 살아도 폰을 붙잡고 사소한 이야기까지 전부 떠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친구에게, 친구의 이야기는 나에게, 점차 남의 이야기가 되어 갔다. 사사로운 일을 공유하는 것이 머쓱해져 갔다. 대화는 줄었고 어느새 3년이라는 공백이 생길 만큼 우리는 멀어졌다.
얼마만이야! 포옹을 나눴다. 그 포옹은 3년 치 포옹이었다. 그 포옹 안에 담긴 것은 반가움과 반가워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었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모습에 3년의 공백은 이미 없는 시간 같았지만, 3년 만의 재회는 포옹 정도 반가움은 돼야 할 듯싶었다. 예약해 둔 식당에 들어갔다. 만나기 전까지는 어디서 무얼 먹느냐가 중요했지만 식당에 들어간 순간부터 음식은 무엇이든 상관없게 되었다. 지금은 어디서 일해? 그 질문은 많은 걸 담고 있었다. 마지막 만났을 때 난 수험생이었다. 몇 달 뒤 합격했고, 첫 직장이 생겼고, 쭉 다니고 있다. 예전에 우리가 함께 자취하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다. 나의 시간은 친구에게 닿지 못했다.
대화는 보통 이미 공유된 정보 위에 새로운 정보가 쌓이며 이뤄진다. 하지만 긴 공백은 어디까지가 공유된 정보인지 찾아가는 것부터 대화를 시작하게 했다. 이 얘기했었나? 더듬더듬 공백의 시작점을 찾는다. 기대는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데에 있었고, 들뜸은 내 얘기할 기회를 얻은 데에 있었다. 기대와 들뜸은 차분히 눌러도 삐져나와 공기 중을 떠돌았다.
그날의 식사는 훌륭했으나 맛에 대한 상투적인 칭찬마저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3년의 시간은 3시간으로 압축되어 오고 갔다. 난 그동안 7년의 연애를 끝냈고, 새로운 연애도 스쳐 보냈다. 독서 모임을 운영한다. 모임을 운영하며 낯가림은 사라졌고, 새로운 만남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친구는 최근 이별했다. 친구의 회사는 대표말고 다들 떠났다. 친구는 책을 집필해 출판까지 했다. 이 모든 수다거리는 공백에서 나왔다. 각자에겐 과거가 되었거나 익숙한 현재가 된 일들이 서로에겐 새로웠다.
시간은 그 자체로 테이블에 올랐다. 3년이 순식간이었다고도 했다. 일을 시작한 1년은 시간이 정말 안가더니 자리를 잡은 지금은 벌써 연말이라며 놀라워했다. 대화 3시간도 순식간이었다. 3년의 공백은 날 것의 이야기를 숙성시켜 군더더기를 걸러내고 깊은 액기스만 남겼다. 크로노스가 완결시킨 이야기는 3시간 동안 맛있게 나눠졌다. 그야말로 시간이 먹여주는 대화로 공백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마침표는 새로운 공백의 시작점이다. 우리는 각자의 카이로스 세계로 흩어졌다. 새로운 공백의 시작점과 끝점은 어떤 모습일까. 변화없이 단조롭다면 나의 카이로스는 빠르게 흐를 것이다. 다채롭고 새롭다면 나의 카이로스는 더디게 움직일 것이다. 나의 카이로스가 숙성시킬 내 삶은 과연 어떤 맛일까. 느릿하게 흘러 충분히 숙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