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이유

by 글희

글을 왜 쓰냐면 봐달라고 쓴다. 형체 없이 너저분하게 떠다니는 감정을 붙잡아, 이름을 붙여보고, 이런 저런 생각과 성글게 엮다가, 또렷한 문장으로 풀어내면, 그렇게나 흡족할 수가 없다. 이 흡족함을 알아달라고 쓴다.


그렇게 시작했다. 실 가닥가닥이 얽혀 뭉치가 된 마음이, 도대체 어떤 가닥들에서 왔는지 하나하나 발가벗기려고. 발가벗기고나면 나 대신 발가벗겨줘서 통쾌하다며, 내 글을 봐줄거같아서. 그래서 정확한 글을 쓰고싶다. 다른 사람은 포착하지 못하는 그 한 콕을 찝어내 드러내고, 너도 이렇게 느끼지? 봐봐 나랑 비슷하잖아! 나 잘했지? 으스대고 싶어서.


기억력이 참 안좋다.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 옛날 얘기를 하고 있으면 내가 속했던 시공간이 낯설어서 경이롭다. 이렇게 말끔히 잊어버릴 수가 있나. 분명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내 얘기 같지가 않다. 글이라고 다를까. 내가 쓴 글도 시간이 지나면 남의 글 같은데. 그러니까 정확하지도 않은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모두의 글은, 더더욱이나 내 얘기 같을 수가 없는거다. 느낀이만이 쓸 수 있는 정확한 글. 근데 느낀이가 나라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읽는 순간 내 기억과 감각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글을 쓰고싶은 거다.


글을 쓰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전후가 바뀌었다. 느끼고 -잡아-써야하는데, 쓰려니까-잡으려고-느낀다. 나를 사랑하는데 쓸 마음을, 내 기록을 사랑하는데 써버린다. 그래도 글은, 내가 마음 다해 사랑할 대상이 되어주었다. 기꺼이 되어주었다. 찰나의 감각과 뭉근한 감정을 글씨로 정렬한다.


글엔 내 삶이 담겨서, 글을 사랑하다보면 삶도 사랑하게 된다. 빈약하고 허울뿐인 글은 싫다. 더 정확하고 진실되게 쓰고싶은데, 잘 쓰고 싶기까지 해서. 허울 없이 잘 쓰려면 내 삶부터가 알차야 해서, 삶도 옹골차게 채우려고 한다.


나는 글을 쓰고. 글은 나를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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