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를 붙잡고 우는데
엄마는 누구를 붙잡고 울지
엄마는 성인 adhd라고 하신다. 어디서 진단받은 건 아니다. 본인께서 직접 진단하신 건데,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닐 거다. 엄마는 직접 다른 이들의 병명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사람인데, 본인 병명을 모를까. 내가 엄마를 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긍이 된다.
생활공간에서 엄마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웃음이 난다. 어제는 엄마 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권브이 인형이 엄마 책장에 올려져 있었다. 이게 왜 여깄지? 정확한 경위는 몰라도 마지막 장면만큼은 알겠어서 웃기다. 제자리에 놓이지 못한 인형이 너저분하게 있으면, 엄마가 그걸 발견하고 ‘이건 왜 여기 있지?’ 잠깐. 아주 잠깐! 의아해하시다가 ‘별생각 없이’ 책장에 무심히 놓아뒀을 거다. 이런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마라톤 의상이나 메달, 내가 벗어둔 모자 같은 게 엄마 방 엉뚱한 데에서 툭 튀어나오곤 한다. 나한테 이건 뭐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무심히 놓아두곤 까먹으셔서, 나중에 “엄마 이건 왜 여기에 뒀어요?”하고 물으면 “글쎄? 그냥 있어서 뒀지?” 하고 마신다. 그게 웃겨서 키득댄다.
엄마는 자주 누워계신다. 고개만 꺾어 침대 머리판에 기대시고, 이불도 안 덮고 대자로 누워 핸드폰을 보신다. 나는 그 옆에 앉거나 누워서 핸드폰 보는 엄마에게 자주 말을 거는데, 핸드폰만 응시하며 듣는 체 마는 체 듣다가도, 어 검색해 봐야겠다! 하실 때가 있다. 가령 날씨라고 한다면, 날씨 검색한다고 인터넷에 들어가셔선, 뉴스 헤드라인으로 뜨는 기사를 보시다가 나에게 기사를 보여주신다. “엄마 날씨는?” 하고 짚어주면 그제야 “아 맞다~”하면서 날씨를 검색하신다. 이 일련의 패턴이 그렇게 히죽대게 웃기고 엄마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엄마는 최근 스위스 여행을 가셨다. 아부지랑 둘이서 가신 해외 자유여행으로는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일본이었다. 거긴 그나마 생활양식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고 풍경도 익숙한데, 편도로만 13시간인 유럽 나라라니.
엄정하셨던 아부지는 조금씩 노쇠해지신다. 티비를 볼 때에도 바른 자세로 꼿꼿하게 앉는 흐트럼 없으신 분이다. 그런 아부지께서 세상에 지난번 여행 때도 지지난번 여행 때도, 출국장에 짐을 두고 나오셨다. 작은 실수여도, 아부지 인생에 없던 일이라, 아부지의 노화와 노쇠를 모두 보여주는 듯해서 서글펐다. 아부지 본인도 크게 놀라 허둥대셨다.
반대로 어무니께서는 본디 태평하시다. 큰 일에 대한 계획이나 걱정 자체가 없다. 작은 실수에 허둥대는 아부지와 아무 걱정 없이 태평하신 어머니의 조합. 영어도 잘 못하시는 두 분이 머나먼 타국에 여행을 가시는게 여간 걱정되는게 아니어서, 스위스 여행 기본 상식을 ppt로 만들어 드렸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여서, 갯가에 아이를 내놓은 심정으로, 이른 아침 늦은 밤 가리지 않고 카톡으로 잘 지내시냐고, 사진 좀 보내라고 재촉했다.
사진 속 두 분의 얼굴이 너무나 해맑으셔서, 근심 걱정 없이 말갛게 웃으셔서,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놓이고 푹 흐뭇했다. 스위스는 하루 내에 사계절이 다 있다더니 과연 그랬다. 어떤 사진에선 두 분 다 셔츠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걷어 올리시더니, 어떤 사진에선 눈보라가 휘몰아쳐 패딩을 입고 휘날리는 스위스 국기를 간신히 잡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이든 엄마 아빠가 다 방실방실 하셔서 좋았다. 마음이 푸근했다. 나중에는 여행 사진이 궁금해서 사진 좀 더 보내보라고 보챘다.
지금이라도 가셔서 다행이다. 이렇게 여행을 잘 즐기시는데. 여행은 건강한 몸이 선행되어야 해서, 엄마 아빠가 여행을 즐길 날이 햇수로는 몇 년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난 아직도 내 방보다 엄마방이 편안하다. 사람 사는 푸근함이 녹아있어서 그 속에만 있어도 편안하다. 엄마는 제 발 니 방에 좀 가라 하는데 내 방은 삭막하다. 뭐가 없다. 지저분한 생활 흔적만 있지, 나 없는 사이에 언제 놓인 지도 모르는 인형 같은 건 없다.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잘 때만 간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고아가 된다. 난 슬프고 힘들 때 엄마를 붙잡고 우는데, 엄마는 누구를 붙잡고 울지? 우리 엄마네 엄마는, 엄마가 대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네 엄마. 난 어렸을 때 우리 외할머니가 우리 엄마의 엄마인 줄 알았다. 좀 나이 먹고 나서야 재혼하신 걸 알았고, 엄마의 진짜 엄마는 우리끼리는 ‘엄마네 엄마’라고 구별해서 불렀다. 우리 엄마는 엄마네 엄마가 소천하실 적 나이를 이미 한참 넘어섰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엄마네 엄마’는 영원히 엄마다. 30년이 넘게 흘러도 엄마는 엄마를 그리워하신다.
나도 그러겠지. 엄마 존재는 영원한 모성상으로 남아 날 보듬고 품어주겠지. 난 영원히 고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룰 수 없는 소망이지만.
아! 태권브이 인형은 왜 거기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 이사하면서 인형들 싹 정리하다가 그 인형만큼은 귀여워서 올려둔 거랬다. 엄마가 여러 인형 중 태권브이 인형을 보고 ‘얜 좀 귀여운데?’하고 냅뒀단 생각을 하니까 또 웃음이 난다. 그건 내 인형인데 왜 엄마가? 키득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