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야기 2. 끝남의 용기

2부. 사랑과 용기

by 글희

끝내려는 용기가 얼마나 초라했던지.​


용기는 주저함이 있을 때 내는 단어다.

끝내려는 ‘용기’를 냈다지만

결정이 아직 단호하지 못하단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되새기는 거다.

내 선택이 옳다고. 밀고 나가라고.

이걸 용기라고 부른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이별을 말하는 그 앞에서

내가 사흘간 다잡은 용기는 보잘것없었다.


이별

사흘 만에 재개된 카톡에서 그는 시간을 더 갖고 싶다고 했다. 빈자리를 느끼고 무언가를 깨닫기엔 사흘은 짧았다고. 내가 치열하게 고민할 동안 그는 뭘 한 건지 억울했다. 나는 생각 정리가 끝났으니 오늘 만나자고 재촉했다. 끝내려는 용기를 보여주고 승기를 잡을 생각이었지, 정말 끝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내 용기와 결심을 보여주면, 상대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내 바람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아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점심 무렵쯤 되니 문득 상대 마음이 궁금해졌다.

“응 난 그만하고 싶어”

철렁 내려앉았다. 말해도 내가 말할 줄 알았던 말을 그에게 들어버렸다. 카톡이었으니 봐버렸다 해야 할까. 문장부호 하나 없는 단어 조합이 무서웠다. 어떻게든 되돌리고, 무엇이든 되돌리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이별이라는 결말 앞에선 내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전화 너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금이 간 듯 갈라지더니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끊긴 사이사이 소리는 축축했다. 7년 사귀는 중에도 우는 건 손에 꼽았는데... 목소리에 눈물과 눈물을 참는 애씀이 함께 담겨 있어 애처로웠다.

'아 오빠가 울 때는 이런 목소리구나

... 우린 헤어지겠구나.'

그의 단호함을, 여지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에서 다 알았다. 갈라지는데도 이어지는 목소리엔 그의 결심이 얼마나 결연한지가 다 들어 있었다.

“만날 때까지만 보류해 주라”

힘겹게 얻은 동의로 우리의 수명은 단 몇 시간 늘어났다.

스무살부터 스물일곱 될 때까지 항상 옆에 있던 그가 사라졌다.

이별은 종일 고역이었다. 내 마지막 모습이 초라하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이별 과정 내내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다. 덕분에 겉모습만큼은 덤덤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3200번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이별이 몰아닥쳤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 내렸다. ‘나 내렸어!’ 이 한마디 카톡도 이제 못하는구나. 우리는 헤어졌구나. 이별을 처음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이별은 하루 온종일 지뢰처럼 숨어있다 터졌다. ‘나 일어났다!’ 카톡으로 하루를 열던 습관은 매일 아침 이별을 상기하는 장치가 되었다. 그래서 아침에 가장 슬펐다.


일할 때는 잊고 있다가 퇴근길 버스에서 까먹고 있던 슬픔이 올라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강민경의 '너여서(My Youth)'를 들으면 모든 가사가 한마디 빼고 내 마음 같아서 울었다. '마침표를 찍을게'라는 가사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믿기지 않았다.

이별이 온 공간에 침투해 있었다. 우리 집 근처 그가 자주 주차해 놓던 빈자리를 보면, 혹시 그가 내가 그리워 한번쯤은 찾아주지 않을까, 우연히 주차해 놓은 그의 차를 내가 발견해버리진 않을까 상상했다. 드라마나 영화의 연출처럼, 이곳저곳에 행복했던 우리 둘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심야영화를 보고 함께 농구를 했던 공터에는 행복이 곳곳에 묻어있어 다시 찾지도 못했다.

그러나 애잔하게도 시간은 흘렀다. 매일 같이 울던 빈도는 일주일에 두세 번, 한 번으로 줄더니 어느샌가 이별을 떠올려도 울지 않게 되었다. 마음 한 귀퉁이가 아렸으나 눈물까진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이별이 가벼워질수록 가벼움이 반가우면서 그렇지 못했다. 익숙해졌다 싶으면 그게 잊는 걸까 봐 기억을 꺼내어 울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미련

기억에서 슬픔이 지워지고, 마침내 내가 괜찮아져 버리면, 우리는 정말로 끝인 거 아닐까

매듭짓기가 싫어 계속 꺼내어 울었다. 일부러 공터에 다시 찾았다. 그 곳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다시 서글퍼졌다. 밤이 되면 함께 쓰던 블로그를 다시 읽고, 둘이 웃고 있는 여행 브이로그를 다시 보면서 그 시절을 애틋하게 그리워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덤덤해졌다. 애틋하지만 이미 과거가 된 학창 시절 마냥, 작별한 사람 또한 과거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꺼내어 기억을 되짚는 습관은 여전히 놓지 못했다.

헤어진 후로 기대가 단념될 때마다 기다림은 모양을 바꿔 이어졌다. 혹시 우리집 근처에 와주지 않을까 길을 지나갈 때마다 흘긋 보던 빈 주차자리는, 이사를 갈 때까지 차지 않았고, 내가 이사를 감으로써 기대는 단념되었다. 단념된 기대는 메일로 옮겨갔다.

그가 나에게 연락을 한다면, 메일로 연락을 할 것 같았다. 그가 보낼 메일을 지나칠까 봐 그제껏 읽지 않은 모든 메일을 다 읽음처리 해버리고, 새 메일이 와있을 때마다 들어가서 확인했다.

아침에 카톡을 보내던 습관처럼, 광고뿐인 메일함을 열어보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광고 메일만을 클릭했던 오랜 날들은, 메일에서 그를 다시 마주할 거라는 기대 또한 단념시켰다.

아마 2년 후 그에게 정말로 메일이 오지 않았었라면, 기다림은 또 다른 형태로 유지됐을지 모른다. 대부분은 루틴이 되어 점점 기다림을 의식하지 않게 됐지만, 사실 그 속엔 오랫동안 염원한 재회에 대한 소망과 기다림이 숨겨져 있었다.

미련이다. 끝난 관계를 놓아주지 못하는 주저함은.


끝남의 용기

끝남의 '용기'라고 했지

용기는 주저함이 있을 때 내는 단어다. ‘끝남’은 결과로써 변할 수 없는 사실인데, 난 끝남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끝남의 용기를 내어야만 했지만, 기다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사람이 한층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난 결국 끝남의 용기를 내지 못했다.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받아들이기를 넘어,

관계가 '영원히' 단절되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도 삶은 살아지고, 나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혼자서 잘 살았다.

끝내려는 용기는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증명되지만,

끝남의 용기는 매 순간의 선택이 이어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완성되어 증명된다.

비록 그를 완전히 잊지 못하고

기다림을 한켠에 묻었지만

삶은 그와 무관하게 희로애락을 다 느끼며 살아졌다.

그러니까

용기가 없어도 괜찮다

묻어뒀다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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