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사랑과 상실
매일을 성큼성큼 걸었다.
무너지지 않으니 나아지는 줄 알았다.
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어야 했다.
헤어진 다음 날은 굉장히 멍하다. 티비를 틀어두고 울다가 자다 울다가 잤다.
유튜브를 봤다. 재회 유튜브. 끝내려던 결심이 민망하게 다시 만나고 싶었다.
‘다시 사랑받는 법’ ‘떠난 남자가 돌아오는 심리’
썸네일 속 문장은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회복은 다시 선택받는 법에 관한 것이었다. 상대에게 쏟는 에너지를 거두고 나를 가꾸면 상대가 후에 다가올 거라는 내용이 공통적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무너지는 게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이별 데이트에서도, 마지막까지 초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재회 매뉴얼이 시키는 1단계를 해낸 것이다. 바로 헤어질 때 질척거리지 않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도 익숙한 방식으로 나를 바로 세우면 되겠구나. 캄캄한 홀로서기에 방향이 생겼다.
매일 운동을 했다. 외모 가꾸기는 그 자체로 내 수준을 올리고, 가꿔진 외모에서 오는 자신감이 또 다른 매력이 된다고 했다. 근력 운동 1시간에 달리기 45분, 걷기 75분. 빠짐없이 3시간씩 운동했다.
먹는 음식이 관리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나뉘었다. 완제품을 더 좋아했다. 칼로리와 단백질양이 정량적으로 표시되니까.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약속에서 먹게 되는 음식의 유혹은 피하기 어려우니 약속을 피하기로 했다. 약속을 피한 건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친구를 만나서 헤어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고역이었다. 7년 동안 우리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얼마나 자랑해 댔을까. 그간의 행복과 자랑이 창피로 돌아왔다.
인스타그램을 계정채로 삭제한 건 그 이유도 있었다. 함께 나온 사진을 골라 지우는 게 이별을 광고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계정을 지움으로써 내 연애 행보를 모두 감추고 싶었다.
스스로 고립되어 일-헬스장-집만 반복했다. 러닝머신 위를 한참 달리다 보면 머릿속에서 이별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원망스럽고 눈물이 난다. 그러다가도 달린 지 15분쯤 되면 헉헉대는 몸에 온 신경이 기운다. 아직도 달려야 할 시간이 30분 남았다. 그때부턴 남은 시간만을 본다. 이별은 서서히 의식 밖으로 퇴장했다.
살이 빠지고 나를 가꾸니 자연스레 거울 보기가 늘었다. 새로운 몸은 흡족해 자주 웃게 됐다.
그래서 다 이겨낸 줄 알았다. 다친 상처를 허울로 똘똘 감싸놓고 아물었다고 믿었다.
회복은 상처를 드러내고, 고통을 견디며 소독받고, 새 살이 돋기까지 기다리는 과정임을 외면하는 중이었다.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틈은 열병을 앓게 했다. 상처는 낫는 대신 고름 지고 썩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