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사랑과 상실
*트리거 주의*
본 글에는 신체적 자기혐오, 그리고 성적 비동의 상황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에요!
이별이 몇 달 지나고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다. 봄의 초입 사랑을 잃었던 나는, 가을의 초입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사이 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 단 두 분류만 존재하는 이분법 세상에 기가 막히게 적응했다.
다정한 말투의 남자가 소개팅에 나왔다. 술담배를 하지 않고 몸과 마음 건강 모두 관리하는, 내가 원하던 부류의 사람이었다.
대화가 크게 재밌진 않았지만, 상대가 내게 호감 있음은 명확해 보였다. 헷갈릴 게 없었다. 공통점을 찾는데 열중이었고, 어떤 말을 해도 대단한 삶으로 치켜세워 주었다. 그는 마음에 들기보단 머리에 들었다. 다들 만나면서 마음이 커진다니까 세간의 말을 믿어봐야지… 난 스스로에게 좋아함을 강요했다.
상대는 불도저였다. 나는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미리 이야기를 했음에도, 그는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첫 애프터를 승낙했던 것처럼 고백도 얼떨결에 승낙했고, 인생 두 번째 연애가 시작되었다.
곧이어 후회했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가 기억난다. 따뜻한 남자손. 물리적 온도와 질감, 무게감만을 느끼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 덤덤했다.
몇번의 데이트 후 그는 만나자마자 두 팔을 벌려 안기라는 모션을 취했다. 원래 연애하면 안는 거니까… 그가 벌린 팔에 감겨 그대로 안겼지만 포근하지 않았다. 상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폭 감싸여있는 안정감은 다시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쉬웠다.
그는 곧잘 자신의 꿈이 좋은 아빠가 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고선 내 반응을 기대했다. 자기가 더 좋아졌냐며 물어보았다. 자기가 좀 괜찮은 남자 아니냐는 인정을 바라는 듯했다. 내 꿈은 좋은 엄마가 아니다.
어느 날은 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곤 골반까지 쓸어내리며 관리를 잘한다며 칭찬을 했다. 한참 뒤에 글을 써서 더욱 역겨운 것일까… 그 당시에도 불편했음은 분명하다. 매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관리한 건 맞지만, 실제로 인정을 받으니 나와 내 몸이 순식간에 분리되는 경험을 했달까.
나는 ‘나’이기보다 좋은 연인 기능을 수행하는 무언가였다. 그는 좋은 남자친구이자 좋은 남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자비롭게 대해줄 연인 혹은 아내가 필요했다. 그는 그가 바라는 자아상을 위해 연인에게도 기꺼이 다정할 작정으로 내겐 필요 없는 종류의 다정함을 쏟았다. 비록 그에게 수단일지라도, 친절함을 누리면 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시간이 좀더 흐르니 나에게 스킨십에 대해 물었다. 글쎄, 난 내 스스로가 닫혀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전시키고 싶을 만한 열정도 없었다. 솔직하게 얘기했다. 하고 싶으면 표현하겠다고.
참 스킨십을 좋아하는 듯했다. 설레지도 않는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으면서 괜히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운게 아니라 껄끄러운 거였다. 처음엔 마음이 없이 시작해도 더 깊어질 수 있다던 선배들의 말과 달리 나는 그가 더 좋아지지 않았다.
그는 분명 날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면 술을 마시는 수작은 부리지 말았어야하지 않았나. 어느날 그는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게 술을 권했다.
종로 포장마차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그는 계속 좀 더 쉬다 가자며 손목을 잡고 끌었다. 오늘 그럴 생각 없다고 분명 못을 박았는데도 그는 막무가내로 집에 가려는 날 붙잡았다.
술에 잔뜩 취해 휘청휘청 걷던 나는 힘이 없어 그를 내치지 못했다. 으슥한 길목 전봇대 뒤에서 그가 날 만지는 동안 고개만 돌리고 밀치다가 정신을 차리곤 단호하게 거절하고 도망쳤다. 그가 진실로 악한 사람이었다면 내 거절쯤이야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술에 잔뜩 취했던 그도 내 냉랭한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택시를 자기가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뿌리치고 집으로 왔다. 그 길로 헤어지자고 했다. 그도 자신의 잘못을 아는 듯 장문의 사과를 전해왔으나 감히 날 잡지 못했다. 두 번째 연애는 엉망으로 접혔다.
처음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데이트 내내 과거의 연인이 비집고 올라왔었으니까. 지금 연인에게 못할 마음이라는 죄책감이 깊어지던 중이었다. 헤어질 명분이 생겼으니 내가 더 미안해할 필요가 없겠다고 좋아했다. 그의 실수를 내 자유로움을 위해 과장했다고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피부에 남아있는 더듬는 손길은 마르지 않은 시멘트에 박혀버린 발자국처럼 굳었다. 더 선명히 역겨워졌다. 내 몸은 더 이상 ‘몸’이 아니라 살덩어리의 집합 같았다. 무얼 위해 깎고 다듬은 건지 구역질이 났다. 내가 그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시간이 나에게 혐오로 되돌아왔다.
‘나는 왜 진작에 단호하지 못했을까’ ‘왜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대했을까‘
가혹하게 몸을 다룸으로써 회복하려던 시도는 잘 다듬어진 몸만 덩그러니 남겼다. 전연인을 향한 깊은 그리움이 공허하게 맴도는 그런 몸뚱아리만.
타인의 기대를 맞추고자 다듬던 몸뚱아리는 길을 잃었다. 뻥 뚫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끊임없이 넣었다. 이분법의 세계는 무너졌다. 내 삶은 오로지 먹는 세계 밖에 없었으며, 그 세계 속에서 몸이 디룩디룩 불어나는 동안 마음만큼은 앙상히 가여워졌다.
내 몸은 나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