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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인경 Jan 18. 2020

<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맨발’을 생각하다

향미의 맨발, 너무 큰 슬리퍼 그리고 새 양말들

마침내 <동백꽃 필 무렵>을 정주행했다.


모바일 앱 wavve의 다시보기 서비스에는 2회분을 1시간으로 묶은 세미 다이제스트 버전이 올라 있었다. 풀 버전으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드라마 종영 후까지도 사람들이  ‘동백이, 동백이~’ 하는 까닭을 이해하기에는 그다지 모자라지 않다.     


 총 36부 마지막 특집방송 2회분까지 석 달여 동안 화제성 지수 1위를 오르내리던 드라마였던 만큼 <동백꽃 필 무렵>의 미덕은 차고도 넘쳤다. 대사, 플롯이 주는 몰입감, 연기와 연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감대 형성까지 흠 잡을 곳 없이 매끈해 그 미덕들을 분석하고 꿰뚫은 수많은 기사와 글들에 나 까지 보탤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던 몇 개의 ‘발’과 ‘신발’ , 예전에 보았던 다른 드라마 속 그것들과 개인적 기억으로 엮여 마음속에 남은 작은 울림은 적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향미는 옹산에서 가장 큰 트러블 메이커였다.


동네 웬만한 남정네들을 마음껏 후리면서도 자신이 꽃뱀이란 사실을 부정하지 않던 그녀의 입에서는 평범한 이들이 감히 담지 못하는 말, 속물스런 마음을 꿰뚫는 말, 동백이와 견주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삶까지 가감 없이 쏟아졌다. 그녀의 말에 상처 입고 움츠러들고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기에, 저수지 위로 떠오른 그녀의 시체를 앞에 두고 각양각색의 살해동기가 다 그럴듯했다.


그녀가 처음 옹산에 나타난 건, 눈발 날리는 시리고 추운 겨울날이었다.

페디큐어가 벗겨져 빨갛게 얼어붙은 맨발에 싸구려 슬리퍼를 신은 채, 두 덩어리의 허름하고 커다란 짐가방을 끌며 카멜리아에 나타났던 향미는 게장골목과는 통 어울리지 않게 이물스러웠다.


두루치기 안주를 잘 만드는 바람에 술까지 팔게 된 동백이와 달리, 그녀는 술부터 파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웠을 말과 애티튜드와 생각을 가진 ‘직업여성’의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향미를 동백이보다 쉬운 여자로 여겼다.


하지만 많지 않은 나이에 거칠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향미의 신산스러운 삶은, 보살펴야 할 동생과 한 묶음으로 버려지던 어린 날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눈보라가 쳤고 둘 다 작은 맨발에 커다란 슬리퍼를 신은 채였다.


그 추위는 아마 살아있는 나날 내내 향미와 함께였을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 모아 이십 몇 만원 삼십 몇 만원까지 공부하는 동생 유학비로 부치고도 모자라, 이런 저런 한국 음식을 따로 넣어 보낸 박스에서는 어김없이 새 양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결혼도 하고 더 이상 춥지 않는 집에서 여전히 향미의 도움으로 살아 가면서도 그 돈의 고마움에 앞서 유흥업에 종사하는 못 배운 누나가 부끄러운 싹수 노란 동생.

그가 짐작하지 못하는 향미 마음 속의 추위는, 보살핌이 닿을 수 없는 추운 땅 코펜하겐과, 버려지던 의 시린 기억 속 추위가 더해져 끈질기게 매서웠으리라.


자신의 삶을 바쳐 가족을 부양하던 딸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익숙한 우리에게,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그 이야기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향미의 맨발이

나는 두고두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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