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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인경 Jun 01. 2020

공무원이 만드는, 돌아온 무한도전

충주시 공식 유튜브 충TV의 홍보 이야기1

덕질의 시작 - 아들의 추천 알고리즘에 떠오른 "충 TV"


군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은 재미있는 동영상이 있다고 하면서 유튜브로 "충주시"를 검색해 보라 한다.

줄줄이 올라온 동영상들은 에피소드마다 적게는 2-30만부터 많게는 80만이 넘어가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어 이게 뭐지? 하는 궁금증이 앞선다.

 "장관 VS 주무관"이란 제목의 보건복지부 장관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름도 생소한 녹지직, 시설직 공무원 인터뷰를 거쳐 하수처리장 공무원 이야기를 담은 "극한 공무원 1, 2탄"까지 단숨에 4-5개 컨텐츠를 돌려본 나는, 그날 저녁으로 64개 중 절반을 섭렵하기에 이른다. 덕질이 시작된 것이다.


채널의 크리에이터는 충주시청 홍보담당관 소속 8급 김선태 주무관.

일명 "홍보맨"인 그는 전국구 유튜브 스타.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 홍보의 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시장님의 독대(로 포장된) "지시"로 시정에 관한 유튜브 홍보를 시작했다고 한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공무원 세계의 절대법,  "업무분장"은 이런 것이다. (ㅎF.. 업무분장...)


출발이 이렇다 보니 담당자의 억지 춘향 노릇은 숨길 것도 미화할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컨셉이 된다.

거기에 공무원이기에 앞서 동시대 감각 충만한 김선태 주무관의 개인 성향과, 높은 잘 빠진 A급의 완성도를 빗겨,  허술함과 솔찍함이 무기인 B급 유튜브 정서가 만나,  구독자 수 "거의 10만", 그러니까 8.3만에 개그맨을 웃기는 대박 채널로 순항중이다.

(전국 지자체 유튜브 순위 2위. 참고로 1위는 당연히 인구 천만의 서울시 유튜브. 업로드 동영상 3.2만개에 구독자수 11만.)

인구의 21만의 지방 소도시에 고작 64개의 업로드로 만들어낸 결과로는 가성비, 가심비 모두 어마무시하한 성과다.




충TV를 말하는 다섯 개의 코드 속으로


이처럼 충TV가 대박 채널로 자리를 잡은 이유는 뭘까?

다음 5개의 코드로 그 이유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번째 코드, 낯섦 - 관공서? 공무원 맞나?


친구들과 장난 삼아 만들었지 싶게 카메라 워킹은 어지럽고, 등장인물들(대부분 공무원들)은 시종일관 낄낄거린다. 보정을 하지 않은 거친 화면과 액션캠 1대로 만든 단조로운 화면, 선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질문은 인터뷰이와 시청자 모두를 긴장타게 만든다.

매번 첫 화면에 등장하는 원색 문양의 로고나 중간 중간 흐르는 궁서체 자막, 새마을 스러운 BGM, 브릿지 음악은 이게 도대체 시정 홍보를 위해 공무원이 만든게 맞는지 싶게 깨는 요소다.

그 낯선 형식에 실소하며  매력 포인트 1 추가.


두 번째 코드, 엉성함 - 놀이? 일!


충TV의 크리에이터이자 화자, 주연배우기도 한 홍보맨은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대충 다림질한 청남방과 면바지, 내근직 공무원들의 잇템인 검정 패딩조끼, 노 메이컵의 정직하고 무덤덤한 표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오늘 점심시간에도 만난 것 같은 2,30대 평범한 일반인 남성의 모습이다.

그의 파트너 메인 카메라 감독이면서 목소리 출연과 가끔 등장하는 박지현 주무관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그들은 업무인지 놀이인지 모를 대화들을 주고 받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방문해 갖가지 체험을 하고 가끔은 연기도 한다.    

요는 공무원이란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지극히 평범한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일 같지 않게(!)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의 결과이자 컨셉이 바로 엉성함.

하지만 알고 보는 순간 그 엉성함이 충TV의 매우 중요 포인트가 된다.


세 번째 코드, 유머와 유행 - 공무원도 스웩?!


홍보맨의 모든 컨텐츠들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유머와 유행코드 덕에 보는 내내 낄낄거린다.

도내 2명 뿐이라는 의회 속기직 공무원 인터뷰를 보자.

인터뷰는 속기직이 하는 일, 직원 숫자, 장단점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의원들과는 친한지, 의회 중에 욕설이 나오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워달라는 요구는 없는지, 의원들을 자주 보니 나중에 출마하고 싶은지, 회의가 없을 때는 무엇을 하는지(업무를 안 하는 기간이니 놀지 않느냐는 취지)와 같이 소소하고 쪼잔해 보이는 것들을 묻는다.

그럼에도 대화를 계속 집중하게 되는 것은 인터뷰이의 말 속에서 찾아낸 최신 감각의 유머 포인트 때문.

이를테면 속기직의 장점이 뭐냐, 다시 태어나도 속기직 할거냐, 자식이 한다고 해도 시킬거냐를 묻고, 원한다면 시키겠다는 대답을 끌어내면 "권문세족"하고 엄근진 궁서체 자막을 붙이는 식이다.

평범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만드는 자막.


네 번째 코드, 친숙한, 너무도 친숙한 자막의 힘 - 반갑다 무(모)한도전!!


충TV 유머의 8할은 무엇보다 자막이다.

장장 12년간 지속된 MBC의 무한도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던져진 등장인물들이 헤쳐나가는 모습을 낄낄거리면서 바라보던 토요일은 손꼽아 기다릴만큼 즐거웠다. 무한도전을 해석할 때 등장하는 단골 코드들 - B급 감성, 미친 편집, 곳곳에 배치된 유머코드, 캐릭터 쇼,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막-은 홍보맨 곳곳에서 보인다.

그 중 자막을 보자.

홍보맨의 자막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한번 더, 깊숙이 의미를 새겨주는 장치다.

방송용 전문 장비와 잘 짜여진 대본이 셋팅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

하지만 자막은 홍보맨이 처한 상황의 맥락을 정교하게 의미 부여하고 해석의 주체가 되기도 하며 등장인물과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또 하나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행안부 차관을 만나러 간 홍보맨.

차관과의 만남에 앞서 마중나온 31살 윤얼 주무관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 행정안전과 31살 윤얼입니다

- 사투리를 좀 쓰는 거 같은데 고향이?

- ㅋㅋㅋㅋㅋㅋ 고향이 좀 복잡하거든요

- 외국이예요?

- 경남입니다. 통영 1살때, 창원에서 초등학교, 밀양 건너와서 중학교, 부산에서 대학교...

- 부모님이 혹시? 밀수...

- 으이씨

그러다가 문득 카메라맨에 눈길이 간다

-카메라를 찍어주시는 분은 누구시죠?

-저희 팀장님입니다. 5급 사무관님

-행시 몇등정도 하신거죠?

-(자막:청문회) 기억이 안 납니다

-높은 등수는 아닌 걸로~

-카메라빨을 너무 잘 받으시는거 아닌가요?

-(자막)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사무관 원샷

-(자막)그걸 지켜보는 너어어~~


장면들을 지켜보는 내내 함께 낄낄거리는 독자들...


다섯째, 잔잔한 공감과 페이소스 - 선수들은 다 RGRG


우리 시대  "공무원"은 복잡한 연상언어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공시, 노량진, 안정된 삶, 박봉, 규정, 고지식, 스마트...

수십만의 공무원 지망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지만, 정작 개개인의 업무와 디테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피상적인 정보, 무색무취한 태도를 한 거풀 벗기면 거기, 그들의 페이소스가 있다.


폭설이 내린 날, 시설직 젊은 여자 공무원은 눈삽으로 길을 치우고 낫으로 염화칼슘 포대를 찢어 제설작업을 한다. 사무실에서 빨리 눈 치워달라는 민원을 쉴새 없이 접수하다가 다시 눈을 치우러 나간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져있던 3월, 구청과 읍면동 공무원들은 백 몇십 시간, 200시간 넘게 초근을 하고 읍면동의 농지직 공무원은 각종 재해, 돼지열병, AI에 이를 갈며 갖은 업무를 다 한다. 사극에서 보던 '노복'은 오늘날 '공복'의 이름으로 우리 가까이서 매우 친숙한 얼굴로 그렇게 살아간다.


3년차에 접어든 일반행정직이라는 홍보맨은 시설직, 녹지직, 세무직, 무예축제 준비단처럼 자신과 다른 직렬의 동료 공무원들을 만나 그들의 고유 업무에 대해 묻는다. 그의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읍면동 근무가 좋으냐 시청 근무가 좋으냐, 팀장이 잘 해주냐, 동종업게 종사자로써 연봉과 수당과 초근시간과 워라밸을 묻는다. 빠른 템포의 수다맨에 가까워 보이는 그의 인터뷰를 낄낄거리며 따라가다 보면, "공무원"이라는 통칭의 한 묶음인 그들이, 실은 얼마나 다양한 또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담긴다.

그들의 젊음이 아릿하다.  



신뢰와 자율성으로 뚫어낸 관행과 뻔함의 세계


예산규모와 사업의 주목도가 알아차리는 못하는 시대의 코드들

아는 사람은 안다. 공무원 세계에서는 사업 예산이 곧 사업 내용이자 주목도란 것을.

충TV에 배정된 연간 예산은 60만원. 잘해도 못해도 티가 나지 않을 소소한 사업이란 말이다.

충TV가 처음 시작된 것이 2019년 10월임을 감안해 보면, 그들 누구도 충TV가 2020년도에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상황이 될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 싶다. 10월은 내년도 예산 편성이 마무리되는 시점이기 때문. 도리어 주목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덕에 업무 담당자는 하고 싶은 대로 큰 간섭 없이 사브작 사브작 채널 운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김 주무관은 번번히 자차를 운전해 촬영 출장을 다니고 커피를 사 주면서 섭외를 한다. 싸인회를 열어도 억지로 부탁 끝에 찾아온 동료들에게 천원씩 나누어 주며 싸인을 나누어 준다. 이런 웃픈 상황은 여러 에피소드의 배경이 되고 있다.


길을 내는 사람들, 그들을 키우는 시스템


새롭게 사고하고 접근하는 소수와 그들이 만든 길을 탄탄하게 다지는 시스템

특출난 사람이 먼저인가, 시스템이 먼저인가?

그가 떠난 뒤에도 지속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까?

다르게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 관에서 더욱 필요한 이유, 그들이 자라지 못하는 토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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