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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29. 2020

전설의 개 센

나의 첫번째 개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옆에 늘 개가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개는 우리 집안의 전설인 센 이라는 이름의 셰퍼드이다.

내가  8살 무렵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센은 할머니가 밥을 챙겨주던 개였는데 할머니 장례가 끝나자 그 개는 마루 밑에 들어가 밥도 안 먹고 지내다 할머니 뒤를 따라서 죽었다.


실제로 개가 주인을 따라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뿐 아니라 우리 집 친척들에게 물어봐도 모두가 진짜 센이 할머니를 따라 죽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 이후로 센은 우리 집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전설의 개가 되었으며 그다음에 들어온 커다란 개는 무조건 센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렇듯 자랄 때부터 집에는 개가 항상 있었는데 개와 함께 커서 그랬는지 개는 내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 가족(왼쪽에서부터 아버지, 할머니, 남동생, 엄마, 나, 여동생)


내 나이가 60대 중반이라 이미 옛사람처럼 느껴지는 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달라졌는데 특히 개 문화의  인식과 산업이 발전해서 마치 내가 머나먼 다른 곳에서 살다가 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넘어 반려동물이라고 하는 만큼 개나 고양이가 한 가족이고  자식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도 개를  좋아하셨던 분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친구가 강아지 한 마리를  준다는 말을 듣고 친구 집에 따라가셨다고 한다. 그 집에 가서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셨던 아버지가 저녁 늦도록 들어오지 않아 할머니가 아들을  찾아다니느라 걱정을 하신 바람에 심한 꾸중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신 적이 있다.


그러니 나도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애견인이 된 것이고, 환경적으로도 항상 개와 함께 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남동생과 여동생


나와 함께한 개들의 역사를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솔직히 내 손으로 직접 밥 주고 보살핀 개가 아니므로 기억이 아련할 뿐이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주택에서 살았고, 대문도 열어놓고 지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기로 거지가 와서 밥을 얻어 가거나 전쟁 이후 팔다리 한쪽이 없는 상이군인들이 자주 동냥을 하러 다녔다. 목발을 짚고 손에 갈고리를 낀 채 집에 들어오는 일이 흔했고 먹을 것이 없으면  동전을 대신 주기도 했다.


문은 주로 밤에만 잠그고 잤는데 우리 집 개는 목줄을 묶어 기르지 않아 마당을 마음껏 활보하며  살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개는 단 한 번도 아프거나 병으로 죽은 적이 없었지만 대신 잃어버리는 사고로 종종 이별을 했다.


어린 나이에 집에서 기르던  개가  갑자기 사라지면, 혹시나 개가 다시 돌아올까 밤새 귀를 기울이며 며칠씩  뒤척이다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밖으로 뛰어  나가서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어릴 때 내 눈앞에서 죽었던 강아지가 없었다는 것이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개를 잃어버리면 울고 불며 찾으러 다니겠지만 그때는 그런 일을 예사로 여겼고, 모두 사는 게 힘들고 바빠 개에게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며칠 지나면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어렸고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형제들과 함께 지내던 시기라 금방 잊었던 거 같다.


또 1960-70년 대 에는 개 사료가 없고  사람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시절 한국 사람의 식생활은  주로 국, 밥, 나물이 위주였고 고기는 귀하고 비싼 음식이라 개에게 고기를 먹인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밥을 먹는 체하며 고기를 입에 한가득 물고 나와서 개에게 뱉어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다.


지금은 간이 된 사람 음식을 먹이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 개를 키우는 사람은 알고 있지만 그 시절엔 사람이 남긴 음식이 전부이고, 어느 때는 남은 음식이 없으면 개가 굶었다. 동물병원도 드물었고 개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개는  홍역에 걸리기만 하면 죽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더 옛날 아이들이 홍역으로 죽는 일이  흔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어서  홍역 예방주사는 꼭 맞혔다.

요즘처럼  자주 동물병원을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한 가지 더 옛날이야기를 하자면,

학생 시절 우연히 개 껌을 얻은 적이 있다. 어디서 생긴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개 껌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모양도  뼈다귀 모양으로  질기고 이상했다.

작은 조각 하나를 몇 시간 동안 잘근잘근 씹어 대던 개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봤는데 한참 만에 조각 하나를 완전히 삼키고  사라져 버린 개 껌을 강아지가  아쉬워 한 만큼  나 역시  아쉬워했다.

그때는 어디서도  개 껌을 파는 곳이 없었는데(내가 몰랐거나) 지금도 개 껌을 보면 아쉽고 행복한 마음이 든다.


둘째 딸과 3호 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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