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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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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삐삐는 2008년 5월 13일 출생이고  

2년이 넘은 후 우리 집에는 2010년 8월 11일에 왔다.

이미 성견이 된 후 입양된 셈인데 전 주인은 삐삐가

영리하고 중성화 수술도 이미 시킨 건강한 개라고 자신했다.


JP도 암컷이었고, 사실 나는 수놈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주 잠깐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살았는데 그 개가 수놈으로 여러 가지 애를 먹였다.

특히 산책을 나가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돌았다.

또 외출을 하려면 문 밖으로 쫒아 나와서 집안에 넣고 문을 잠그는 등 그야말로 전쟁처럼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다.


그 개는 자주 혼자 밖에서 놀다 들어왔는데

나중에는 경비실 아저씨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면 5층이었던 우리 집에 도착해서 내가 받았다.

그 시절 그때 한낮에는 아파트 마당에 자동차가 거의 없어그게 가능했다.


밖으로 나돌기만 하던 그 강아지는 우리 집과 인연이 없었던지?

결국 그 녀석은  자기 스스로 주인을 찾아 간 셈이었는데  

혼자 밖으로 나돌며 뛰어다니는 걸 보게 된 이웃이 귀엽다고 가끔 자기 집에 데려가서 놀다 오곤 했다는 것이다.

나는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드리겠으니 그 집에서 기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사실 별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그 시절엔 중성화 수술도 모르던 때라 어린 딸들과 함께 수놈을 기르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그 부인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전업주부가 아닌 나가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 개를 기르는 것은 어렵지만 대신 잘 기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있다며 연결시켜 주겠다고 했다.

소개받은 사람은 당시 부산 방송국에서 이름을 날렸던

아나운서였다.

집이 주택이라 마당도 있고 사람들이 좋으니 그곳에

입양을 보내자고 했다.


며칠 뒤 그 아나운서가 직접 개를 데리러 찾아왔다.

나는 편지에 샌디(그 강아지 이름인데)의 버릇과 좋아하는 음식 등 

부탁할 이야기와 주의 사항을 적어서 건넸고

그도 방송국 수첩과 볼펜 등 기념품을 가져와서 주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서울에 가서 유명한 아나운서가 되었고 지금도 활동 중이다.


각설하고,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놈에 대한 편견이 좀 있었다.


JP는 새끼 때부터 키운 녀석이라 오줌을 가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원장 말대로 삐삐는 이미 오줌을 가릴 줄 알고 우리 집에서도 빨리 적응했다.

또 원장은 삐삐를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고 했지만

막상 그 동물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니 오직 중성화 수술한 기록만 있어 모든 예방접종을 시키고 산책 훈련도 시작해야 했다.


삐삐는 미장원에서 사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책을 나간 적이 없을뿐더러 목줄 여러 개를  모두 물어뜯어버려서  목줄을 채운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가기 전 목줄을 채우려면 한참을 붙잡으러 다니며 집안을  빙 빙 따라 뛰어야 했다.

겨우 목줄을 채우고 밖에 데리고 나가 처음 땅에 내려놓은 날 삐삐는 무서움에  벌벌 떨며 꼼짝도 못 한 채 안아 달라고 다리에 매달렸다.


대부분 개들은 산책을 식사 시간만큼 좋아하는 데다가

산책만큼은 꼭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삐삐가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안타까웠다.

상가의 다른 사람에게 듣기로 미장원 원장 누나가 개를 안고 밖에 나가서 앉았다가 오는 것을  봤다기에 그렇게 조금씩 시작했다.


나는 시간과 거리를 차츰 늘려나갔는데

어느 날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삐삐가 입에 물었다.

“안 돼 ” 하며 입 속에서 뺏으려고 하는데 내 손을 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눈물이 핑 돌만큼 서운하고 놀랐다.

JP는 아무리 장난을 쳐도 나를 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서운했다.

내 마음만 성급하고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어느 날 산책 도중 차가 앞으로 오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삐삐 앞을 막아서 섰다.

그때는 삐삐를 사랑하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인데

나의 순간적인 행동에 나 자신도 놀랐다.

이타심이라는 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인간의 본성인지?

아니면 이미 삐삐를 내 자식으로 완전히 받아들인 것일까?


그 날 이후 난 삐삐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집에 데리고 온 지 불과 3주가 채 지나지 않은 날이었는데 미장원에 머리를 하러 가면서 삐삐를 데리고 가보았다.

처음 도착한 삐삐는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서 좋은 듯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미용실 식구들에게 아는 척을 하며 뛰어다녔다.

딸은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데리고 갔다고 나무랐지만

난 아마도 삐삐의 마음을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머리가 끝나고 카운터에서 나갈 차비를 하는데 삐삐가

나를 쫒아 뛰어 오면서 안아 달라고 졸랐다.

삐삐는 자신을 미장원에 두고 엄마 혼자 갈까 봐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는 기세 등등하게 삐삐를 안고 나왔다.


등 뒤에서 지켜보는 미장원 식구들의 시선을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꽃보다 삐삐
산책을 좋아하게 된 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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