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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01. 2020

삐삐를 믿지마세요

나의 귀한, 상처많은 아이 삐삐

삐삐는 이미 2살이 넘었고

어릴 때부터 기르지 않아서 제이피와 달랐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삐삐는 사람이 쓰다듬거나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으르렁거렸고,

시간이 지나자 등에 바짝 긴장을 하면서도 마음은 내어주려는 듯 점차 힘을 뺐다.


나는 그럴수록 삐삐가 가엾고 안타까워서 한없는 사랑을 주었고

제이피처럼 내 곁에 붙어서 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삐삐도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반기는 건 개 밖에 없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아빠도 참 잘 따랐다.

삐삐는 빠르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딸들은 제이피 와는 다른 생각으로 쉽게 삐삐를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는 제이피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말처럼, 다른 녀석이 그 자리를  채워주었다.


동물학자 말에 의하면  일생을 동거 동락하던 충실한 개가 죽었을 때

느끼는 엄청난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느끼는 고통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개가 죽었을 때 느끼는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느끼는 그것에 비하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것이다.

친한 사람이 당신 삶 속에 차지하고 있었던 자리는 다시는 채워지지 않고 영원히 비어 있겠지만,

당신의 개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다시 채워질 수 있다 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실 삐삐는 문제가 많은 개였다.

삐삐를 믿지 마세요

삐삐를 보낼 때 미장원 원장은 칭찬을 늘어놨는데

그걸 다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심각했다.

산책을 나갈 때마다 목줄을 가지고 애를 먹이다

나가는 것이 좀 익숙해지자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개들을 만나면 무서워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자기 덩치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개를 봐도 겁을 내고 줄행랑을 치더니 나중에는 산책 나오는 다른 개만 보면 물어뜯어 죽일 듯 짖고 덤볐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을 무는 것이었다.

나는 산책을 나가면 그야말로 긴장을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특히 동네 꼬마들이 예쁘다고 다가오면 내가 먼저 도망을 쳐야 했다.

괴성을 지르며 겁을 주려고 덤벼드는 아이도 있었다.  

마치 돌진하는 자동차처럼 무조건 다가와 만지려고 천진한 웃음을 띄우는데 나는 그 모습에 식은땀이 났다.

이럴수록  아이들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이들 중에는 먼저 “만져도  돼요?” 하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미안해, 강아지가 물 수도 있으니 안 되겠는데"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삐삐는 아이들을 싫어했다.

미장원에서 지낼 때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삐삐가 예쁜 장난감처럼 생겨서 많이 괴롭혔다니

그때 질린 것이 아닐까? 아마도 손님이니 삐삐만 참으라고 야단을 쳤을 테고..


삐삐의 겉모습은 천사 같았지만 겁이 많고 흥분을 잘하며 사람을 무니 정말 큰 일이었다.

아빠를 물어 벌 받는 삐삐

남편은 몇 번이나 삐삐에게 물려 병원에 간 적도 있다.

한 번은 택배 기사님을 공격해 놀랐고, 아파트 주민을 물어 파상풍 주사비를 드린 일도 있었다.


늘 긴장하고 목줄을 채우고 다녔지만 목줄이 늘어나 미처 잡아당길 새 없이 벌어진 순간적인 일이었다.

초기에 생긴 일로 다행히 그 뒤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방송에서 개가 사람을 물어서 생긴 사고 소식을 전할 때마다 우리는 더욱더 신경을 쓰고 각별한 주의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삐삐가 사람을 무는 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원장에게 솔직히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를 문 적이 있고, 서울로 입양 보냈다가 주인을 물어서 일주일 만에 파양 당했다고도 했다.

개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편으론 서울로 보내졌고, 다시 쫓겨나 돌아왔을 삐삐가 가엾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 귀엽고 예쁜 얼굴에 속아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도 속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리 탁자 위에서 잠만 자던 삐삐를 보며 어쩜 저렇게 순한 개가 다 있을까 했던 나이니 말이다.

작은 딸은 삐삐가 우리 집에 와 '음. 이 집이 괜찮군.' 하며 이제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자기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며 나를 놀렸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인데 한 번은 삐삐가 유리 탁자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고

그 이후엔 그곳에 올려두면 내려오지 못하고 얌전히 있어 놔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오줌도 참으며 하루 종일 얼마나 무기력하고 힘들었을까 진작 우리 집에 데리고 올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왔고

삐삐의 힘든 과거를 보상해주듯 더 많이 사랑해주고 잘 살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엔 자라온 과정을 짐작해보며 미장원에서 사는 동안 학대를 받았나? 의심도 했는데

오랜 시간 지켜본 미용실 식구들 인품으로 봐서 그런 나쁜 사람들은 아닌 거 같았다.

단지 그들은 삐삐가 형제 중 제일 크고 건강해서 데리고 왔고,

개를 생전 처음 길러 보는 것이라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저 예쁘고 귀여워서 데리고 살면 되는 줄 알고 쉽게 생각하고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나 많은 책임과 사랑을 동반해야 하는지,  

내 가족 대하듯 똑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펴야 하는지 처음엔 미처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중 처음 삐삐를 데리고 왔던 그때를  알던 몇 사람들이

삐삐 모습이 밝아지고 달라져서 마치 다른 강아지인 줄 알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니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온 강아지가 과거의 모습과 달리 편안해 보인다고 하니 기뻤고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마다 보란 듯이 달라진 삐삐를 자랑하고 싶었다.


내 아이가 귀한 아이라고, 남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이라고,

부모가 있고  우리 가족이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라고.

그렇게 보여주고 인정받도록 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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