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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05. 2020

새 가족이 생기다

둘째 딸이 결혼을 했다. 


사위가 인사를 하러 오고, 함을 받고 그러느라 부산에 자주 내려왔다.

딸과 사위를 데리고 여행도 몇 번 갔는데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삐삐를 미장원에 맡겼다.

사실 삐삐를 데려올 때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은 큰 딸을 보러 하와이에게 가야 하니 

그럴 때 삐삐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었다. 

병원에 가두는 것보다 전 주인과 함께 있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머지 다른 여행은 남편과 함께 다니지 못하고 항상 교대로 집을 지켰다.


그렇게 며칠을 떨어져 해외에서 지내다 돌아올 때면 

밤늦게 도착하더라도 양해를 구해서 꼭 집에 데리고 왔다.

하루 저녁이라도 집에서 재우고 싶었고, 며칠간 산책을 못 했으니 밤이 늦어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미용실에 맡겨진 삐삐 / 삐삐와 삐야(미용실에 새로 온 강아지, 삐삐와 몇 번 함께 산책 시켜주었다)


삐삐는 제이피와 달리 밖에서 배변 활동을 잘했는데 수놈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나무 옆으로 가서 오줌을 싸고 똥을 눈 후에는 항상 뒷발질을 했다.

뒷발로 흙을 덮는 시늉을 한 후 개운한 듯 여기저기 팔짝팔짝 뛸 때마다 남편과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

백번도 더 본  삐삐의 버릇이었지만 볼 때마다 웃고 신통했다.

깡충깡충 뛰어다닐 때는 하얀 토끼 같아서 그 모습이  귀엽고 흐뭇했다.

그러나 삐삐는 결코 아무 곳에나  싸지 않고 길거리 중간에 실수를 한 적도 없다.

수풀 사이 깊숙한 곳에 들어가 조용히 볼일을 보는데 

사람이 지나가거나 불안하면 볼 일을 보지 못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또 똥을 눈 후에는 자기 식의 뒤처리로 뒷발로 힘껏 흙을 찼는데 

그것이 개의 본능적 행동인지 모르겠으나 그게 늘 우리 부부에게 웃음을 주었다.

(삐삐가 떠난 후 남편은 우리 삐삐는 너무나 깔끔한 녀석이었다고 자랑한다.)


삐삐는 소리에 민감해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소리에도 짖어대곤 했는데 

갑자기 짖는 그 소리에 놀라서 기절초풍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주의를 줘도 끝내 고치지 못하고 아파트 문에 방음 설치를 하고 

중간에 문을 하나 더 대는 등 온갖 노력을 했다.


미장원 원장 말이, 짖는 버릇을 고치려고 목줄에 장치를 하는 등 별 짓을 다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삐삐는 인터폰 소리에서부터 누군가 집에 사람이 온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때부터 흥분해서 짖었다.

현관문 벨 소리를 꺼 놓는 것은 물론, 1층 공동현관에서 인터폰이 울리면 삐삐를 방에 넣어 두어야 했다.

택배를 받거나 사람이 집에 들어오는 날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어느 날 조카 녀석이 장가를 가고 아기 아빠가 되어 우리 집에 인사를 왔다.

그날도 삐삐는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짖고 흥분을 했다. 

두 명의 아이를 보니 삐삐가 하도 날뛰어서 방에다 가두었는데 또 방에서도 마냥 짖게 놔둘 수가 없어 

목줄을 채워 줄을 잡고 안절부절못했다.

딸이 결혼을 했으니 언젠가 아기를 낳고 친정에 오는 날이 생길 텐데 어쩌나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더군다나 아이를 싫어하는 개이니 더 걱정이었다.


사실 사위가 실수로 삐삐에게 손을 물린 적이 있다.

그때가 내 생일이었고, 우리는 케이크 위에 초를 켜고 노래를 부르며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 생일과 내 생일 때는 항상 케이크와 함께 사진을 찍는데 그때마다 삐삐가 자리를 함께 했다.

그래서 생일 때마다 삐삐는 나에게 안겨 있는 사진 속에 등장한다. 


그날도 이야기를 하다가 사위가 내 쪽으로 무심코 손을 뻗었는데 삐삐가 엄마를 공격하는 줄 오해하고 

사위 손을 물었다.

순간적이지만 날카로운 이빨에 사위 손에서 피가 났다.

딸은 사위에게 약을 발라주고 삐삐를 야단치고 소리를 질렀다. 

개는 그 순간이 지나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니 바로 확실하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사위에게 미안하지만 딸이 삐삐를 야단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매년 삐삐와 함께 한 내 생일

3년 여 만에 손주가 생겼다.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기뻤지만 늘 마음 한구석으로 걱정을 했던 터였다.

입덧을 많이 했던 딸은 그래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다녔다.

그래서 친정에 잘 내려올 수가 없었는데, 아기를 낳고 휴직하면서 자주 친정에 와서 지내다 가곤 했다.


손주 백일을 치르고 서울에서 함께 부산 집에 왔는데 개가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드를 설치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신기하게도  삐삐는 아기를 우리 식구로 아는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절대로 아기를 혼자 내버려 두지 못했다.


삐삐는 호시탐탐 아기가 자는 방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혹시 잠깐 딴 눈을 판 사이에 개가 없어 방에 들어가 보면 아기 이불 옆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손녀 옆을 지키는, 함께 있고 싶은 삐삐


아이가 자라면서 기어 다니고, 사물을 쳐다보기 시작하고, 걸음마를 하고 

드디어 뛰어다니며 집안의 사물을 만지니 삐삐가 더 걱정이었다.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삐삐를 만질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딸은 아이에게 삐삐가 어흥! 한다며 삐삐를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수십 번 주었고

영특한 손녀는 그 말을 잘 알아듣고 따랐다. 


손녀가 다가가면 삐삐는 슬슬 피했지만 

아이가 있는 방 문 앞에 앉아서 언제 나오나 하며 방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아이가 자라면서 영상통화를 할 때면 빠지지 않고 삐삐와도 통화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 순위에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손녀도 삐삐를 사랑했다.

아침이면 함께 사과를 깎아먹고

삐삐를 가까이 오게 하고 싶어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삐삐야 이리 와"하며 불렀다.

자기 엄마 눈을 피해 슬쩍 꼬리를 잡거나 만진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삐삐가 손녀를 보고 짖거나 으르렁 거린 적이 없었다.  


나는 삐삐가 손녀를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에 감사하고 놀라웠다.



삐삐와 손녀 다 같이 산책
영상통화하는 삐삐 / 삐삐를 만지고 싶어 할아버지 앞에 앉은 채 부르는 손녀
삐삐와 함께 장난감 놀이



고마워 삐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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