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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Dec 03. 2020

세상의 빚

나는 아침마다 정해진 운동시간에 맞춰 나가야 했기에 아침 시간이 무척 바빴다.

일어나자마자 삐삐를 데리고 아파트 2층에 오줌을 뉘고 들어와야 하고

강아지 약과 사료를 챙겨 줘야 했는데 그  일이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다.

혹시나 거르면 안 되니 약을 섞은 밥을 안 먹을까 걱정도 되고 약을 물에 개어 사료와 닭고기 야채 그리고

오메가 3를 넣어 주는데 늘 적당한 양과 영양을 맞추려고 신경 쓰면서도 나갈 준비로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아침은 너무나 고요하다.

아파트에서는 오늘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더운지 알 수 없고

심지어 가는 비가 내릴 때는 비 오는지 조차 모르고 나갈 때가 있다.

밖을 나서는 아침 산책을 안 나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가한 아침을 내가 원했던 것인가?

내심 후회스럽고 삐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나 갑자기 떠난 삐삐는 불편한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손녀가 강아지 인형을 갖고 노는데 가만히 인형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인형이지만 코를 만지니 불현듯 삐삐 코가 그리웠다.

촉촉하고 까만 코, 나는 인형이지만 코를 수십 번 만지고 만졌다.

눈도 들여다보고 털도 만져보고싶고 너무나 그립다.

안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개 없는 내 인생이 과연 가능할지 두렵기도 하다.


삐삐를 보내고 우리는 도망치는 사람들처럼 딸과 사위가 사는 하와이로 떠났다.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리라는 헛된 희망과 함께 3개월 치 약과 짐을 꾹 꾹 눌러 담았고 적어도 두 달 안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떠났다.

그러나 남편은 남의 집살이가 불편해서 못 견디겠다고 하며 3주를 겨우 채우고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제이피뿐 아니라 삐삐를 놔두고 와 있는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하지 않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공항에서 우는 딸과 달리 강아지가 있는 나의 집으로 가고 싶어서 늘 뒤도 안 보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밖으로 나가 삐삐 글을 썼다.

우선 어디에도 매이지 않아서 좋았다.

강렬한 태양과 시원한 바람, 여러 종류의 많은 새가 날아와 지저귀는 이국적 경치를 시작으로 하와이의 아침은 모처럼 나에게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주었다.

여태껏 한 번도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함이었다.

집에서 나는 늘 허둥지둥 쫓기는 듯 바쁘고, 해야 할 것이 많아 힘들었는데 딸 집은 내가 주인이 아니다 보니 직접 챙겨할 것들이 별로 없어 나 자신만 위해서 지냈다.

새로울 것도, 꼭 해야 할 일도 없고, 내가 지켜줄 삐삐도 없으니 그냥 어디서  살다가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두 강아지들이 내 인생의 반쪽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미처 모르고 누리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들었다.


남편은 하와이에 가기 전부터 삐삐가 떠난 날짜를 세고 있었는데 주로 불교에서 지내는 49제,

즉 49일이 되는 날짜를 하와이에 있는 동안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로소 49제에  대해 알아보니 유교와 불교의 윤회사상이 결합된 것인데 돌아간 영혼을 위해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이며 죽어서 저승에서 일곱 대왕들에게 7일째 마다 심판을 받아 49일째 되는 날 최종 심판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은 이를 위해 빌어주면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기도를 하는 의식인 셈이다.

환생을 믿든 안 믿든 남편은 그 날에 맞춰서 기도를 해주고 싶어 했는데

한국 날짜와 시간이 하와이와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 계산을 했고 그날 저녁 우리는 베란다에 나가서 기도를 했다.


삐삐를 보냈을 때 우리는 삐삐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다.

삐삐가  세상에 무슨 빚을 졌는지 몰라도 남편은 삐삐가 혹시 모를 세상에 진 빚이 있다면 자신이 다 갚도록 해서 홀가분하게 보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 해서 차근차근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구청에 가 신고도 마친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삐삐의 주치의 장수화 선생에게는 제대로 인사를 못 하고 떠나왔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남편과 나는 선물을 사서 한번 찾아가기로 했는데

특히 마지막 날 삐삐의 수혈할  피를 어렵게 구해준 의사 선생을 남편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와이로 떠나면서 선생에게 다녀오면 한번 들르겠다는 문자 인사를 했지만 아마 의사는 상투적인 인사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선생과 우리의 소중한 인연을 잘 이어 나가자고 하며 나를 통해서 전했지만 사실 나는 전달하지 않았다.

의사를 보면 삐삐 생각에 힘들 것 같았고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이제는 삐삐가 없고 다시 개를 입양할 생각이 없는데  일이  바쁘기 만한 의사와 개인적으로 무엇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지키지 못할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녀와서 한번 찾아간다는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토요일 어느 날,

병원에 전화를 해서 선생이 병원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선물을 들고 찾아갔다.

불과 4개월이 겨우 넘었는데  이제는 나 혼자인 상태로 가는 현실이 낯설고 서글펐다.

남편은 울게 될 것만 같은지  주차장에 있을 테니 혼자  올라가라고 떠밀었다.

역시나 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자주 드나들었고 입원한 내내 숨이 차도록 뛰어올랐던 계단을 올려다보니 마치 다른 세상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삐삐가 저 위에 있었을 때, 하루는 희망으로 하루는 절망으로 미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올라 다니던 계단이었고 한 달에 한번씩 올 때마다 짖어대는 삐삐를 안고 ‘오늘도 제발...’ 하는 심정으로 오르내리던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카운터에서 강아지 이름을 물었다

그 날은  익숙한 얼굴이 안 보였는데 늘 예약을 하고 갔던 데다가 내 얼굴만 보고도 알던 사람들이 하필 없었다.

꾸준히 그 병원을  다녔고  집을 비울 때마다  호텔에 맡겼으니 사람들이 알았다.


삐삐는 이상하게 그 병원에만 가면  흥분한 상태로 짖어대기 바쁜 유별난 개였다.  

다리 수술하면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갇혀 지내며 약을 먹이는 그들이 굉장히 싫었던 것 같다.

특히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나 보조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그들만 보면 원수가 나타난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어서 미안했다.

대체로  거기 온 다른 개들은 얌전해서 더 비교가 되었다.

그런 것 때문에  혹시 우리가 없을 때  미움을 받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물어보곤 했는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우리가 없으면  그렇게  얌전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의사도 똑같이 이야기하곤 했다.

아마도  삐삐는  엄마 아빠를 믿고 큰소리를 친 것이고  우리가 없으면 기가 죽어서 얌전했던 것 같다.

삐삐에게 내가 대단한 버팀목이 되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뿌듯했다.  

언제까지나 지켜 주리라 다짐도 했고 보호자라는 사실이 기뻤던 지난날이었다.


문득 병원 차트에 삐삐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잠시 우물거렸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데  “그냥 선생님만 잠깐 만나면 안 될까요?" 했으나 자꾸 물어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삐삐 이름을 말하고 얼마 전에 죽었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직원은 잠시 당황한 기색으로 의사에게 전했고 마침 진료가 없던 의사가 놀라서 문을 열고 나를 쳐다봤다.


삐삐만 없을 뿐 모든 것은 그대로이고 나와 의사는 진료실에 마주 서 있었다.

선물을 전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신이 없었는데,  

늘 의사의 눈을 쳐다보며 설명을 듣고 이야기했지만 그날은 차마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끝내 나오는 순간까지 시선을 바닥에 두고  이야기했는데

의사를 바라보면  울음이 터져서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선물을 전하고 집으로 왔다.

토요일 오후 선생이 퇴근하는 시간이 다 되어서 급히 찾아간 것인데 얼마 후 집에 도착한 의사에게 문자가 왔다.

얼떨결에 받았던 선물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였다.


삐삐를 보내면서 그때서야 의사라는 직업도 참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이 울고 웃었고  책임감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더라도,  또 오랜 시간에도 자신이 지켜보던 개가 떠나는 경험을 한 것이니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그녀의 문자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먼저 보내는 일이 있을 때마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며

우리 같은 보호자가 있어서 힘내어 계속 아이들을 볼 것 같다고  했다.

그녀 역시 삐삐 생각이 나서 감사하기도 하고 슬펐다고 했다.

내가 나오는 길에 지금 삐삐 글을 쓰고 있다고 말을 했더니 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제 글재주가 없어 힘들어도 안 쓸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꼭 제이피와 삐삐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용기가 솟구쳤다.


아이 러브 하와이 옷을 입은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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