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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30. 2020

소소한 사건사고

제이피 이야기

제이피는 관절염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동물병원이 많지 않았던데다 의료 시설도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아 잘 보는 병원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관절염이 발병 했을 때도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몇 군데 병원을 돌다가 한 병원에서 준 약으로 괜찮아져 운 좋게 수술을 면했다.  


그때만 해도 의약 분업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이피가 먹었던 약이 동물약이 아니라 사람 약의 용량을 줄여서 준 것이고 그걸 내가 알았을 땐 직접  병원에서 준 약을 찾아 용량을 맞춰 약을 샀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가끔 아파트 계단을 오르게 했는데 돌이켜보면 무척 후회스럽다. 제이피는 천천히 힘들게 계단을 올라오곤 했는데 그때는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주 있던 일도 아니고 몇 계단 정도였지만  이미 그때 나이가 많았고 혹시  다리 근육이 줄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운동이랍시고 시킨 것이다.

또 그 당시에는 아파트에서 개를 데리고 사는 집이 많지 않고 동네를 산책 시키면 싫어하는 주민들이 있어서 늘 먼저 인사 하고 눈치를 봤는데  개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죄인 아닌 죄인이었다.

(하지만 요즘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에게 대한 눈총은 여전한 것 같다.)


제이피는 예민해서 집 밖에서 똥을  잘 누지 못했다.

물론 휴지를 들고 다니다가 일을 보면 집에 와서 처리했지만 오줌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물통을 들고 다니며 오줌을 싸면 거기에 부어 씻어냈는데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결국 나중에는 아파트 단지가 아닌 산이나 학교에 데리고 다녔는데 일요일에는 큰 딸이 다니던 대학교 교정에 차에 태워서 목줄을 풀어주고 뛰어 놀았다.


그러다 어느 날 자동차가 급히 달려오다가 제이피가 차에 친 사고가 발생했다.


개가 보이지 않아 차 밑에 깔려 죽은 줄 알고 다리가 떨려서 주저앉았다.

개를 풀고 놀게 한 우리 잘못도 컸지만 학교 교정에서 빠른 속도로 운행한 운전자의 과실도 컸다. 심지어 그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차를 뒤로 빼서 달아나려고 했다. 딸이 운전자를 붙잡고 싸우는 동안 차 밑을 찾아보았지만 개가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 밑에 깔린 줄 알았던 개가 사라져서 놀라 큰 소리로 불렀는데 제이피가 어디선가 멀쩡하게 나타났다.

걱정이 돼서 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너무나 다행이고 신기했다.

함께 산 긴 세월 동안 일일이 다 적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의 일이다.



제이피는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노화가 시작되었다.

‘개가 나이가 들면 사람과 다를 바 없구나’ 할 만큼 귀도 눈도 어두워졌고 종일 잠을 잤다.

제이피는 덩치가 커서  짖는 소리도  우렁차지만 잘 짖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복도에서 소리가 나면 짖지 않고,  벨 소리가 나서 낯선 사람이 들어오거나 할 때 만 짖는 정도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혼자 있으면 짖거나 벽을 쳐다보며 울었다.

사람이 밖에 나가 있으니 집에서 개가 짖는지 알지 못했는데 어느 날 집 앞에  한 장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아래 층 사는 학생이 쓴 편지였다. 바로 밑에 사는 집은 아니었지만 평소에는 짖지 않던 개가 요즘 부쩍 짖는데 공부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잘 모르고 있으니 그걸 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우리 아파트는 두 집씩 15층까지 있는 30 세대였는데 대부분 이사를 가지 않고 한 곳에 오래 사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각 가정의 아이들 크는 모습을 서로 지켜보고 알고 있었는데 그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학생 역시 중고등 학생 시절을 지켜봤는데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 간에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툼도 많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조용히 손편지를 써서 집 앞에 붙여 놓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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