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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30. 2020

생명의 은견

가스를 마시다

제이피를 기를 당시 동물병원도 엉망이었고 개를 기르는 상식이 부족하여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도 엉터리로 양육을 했다.

나는 개를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끝이 없고, 개에게 먹이면 안 되는 음식도 많은데 그것도 잘 모른 채 원하면 무조건 주기도 했으니 어쩌면 독약을 주었던 셈이다.


그러나 수명을 비교하면 (나의 마지막 강아지) 삐삐보다 제이피가 더 오래 살았다.

누군가는 개에게 된장찌개 등 식구들이 먹는 음식을 되는대로 같이 먹였지만 17년을 넘게 살았다고 하던데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수명은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이피는 나와 함께 산 시간만큼 많은 사건이 있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한밤중에 갑자기 남편이 나를 깨웠다.

부엌 쪽에서 제이피가 쓰러졌는데 개가 죽은 듯이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제이피를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 눕혀놓은 채 물을 먹였다.

얼마 후 제이피가 토하기 시작했고 온몸을 마사지해주었더니 눈을 떴다.


그땐  제이피가 산책 중에 쥐약이라도 먹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남편이  뭔가 이상하게 의식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든다며 같은 아파트에 살던 시동생을 불러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


남편은 병원에 간 이후 집안에 남아 있던 내가 걱정되어 시동생을 보냈는데 집에 와보니 나 역시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한 밤중에 그 난리를 겪었고 무사히 병원에서 아침을 맞았을 때도 당시에는 원인을 몰랐다.


처음에는 제이피가, 그다음은 쪼그리고 앉아 제이피를 돌보던 남편이, 그리고 제이피를 안고 있던 내가 차례로 쓰러지니 혹시 개가 어떤 병을 퍼뜨리는 게 아닌가 싶어 시동생은 베란다에 제이피를 가두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학교에 가다가 속이 안 좋아 토하는 바람에 조퇴를 하고 우리 병실로 오게 되었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 도시가스가 샌 것이다.


이사를 간 지 얼마 안 된 데다 보일러실 배관 뚜껑을 열어 놓지 않은 아파트 측의 실수로 (비가 와 습도가 높아져) 가스가 부엌 쪽 바닥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제이피는 부엌 달린 작은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곳이 보일러실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는 미닫이문이 있었는데 남편이 저녁에는 문을 닫아 공간을 분리하여 제이피가 방에서 같이 못 자게 하였다.

안방과 아이들 방은 보일러가 있는 뒤 베란다와 떨어져 있어서 다행히 상태가 그나마 나았다.


그날 밤 남편은 거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TV를 보고 있었고 제이피가 쓰러진 것을 보고 일어나 움직인 덕분에 모두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시간에 모두 그대로 잠들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일로 남편은 제이피가 우리 목숨을 살렸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우리 식구는 당연히 그 말에 동의할 뿐 아니라  지금껏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 날 이후 제이피는 당당히 안방으로 입성하여 줄곧 내 곁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제이피는 우리의 생명의 은인이자, 센 처럼 집안의 전설의 개가 되었다.


침대로 입성한 제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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