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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29. 2020

억장이 무너지다

제이피를 잃어버리다

당시에는 코카가 드물었고 덩치가 크고 어두운 털 색깔 때문에 개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람과 개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개를 끌고 다니느냐고 뒤에서 수군거리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으니 내가 옛날 사람이 맞긴 하다.


그때 TV 동물농장에서 ‘웅자’라는 코카스패니얼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 때문에 코카가 많이 알려졌고 코카를 키우는 사람도 늘어났다.


제이피는 착하고 유순했는데 사냥개 본능이 살아있어 간혹 땅에 떨어진 새나 어느 날은 쥐를  잡았다.

특히 고양이를 보기만 하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바람에 고양이가 놀라 나무 위로 쫓겨 도망치는 일이 많았다.

그때는 (나 역시 지금과 같은 길냥이의 개념이 부족했다.) 제이피의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해서 미처 제이피가 고양이를 못 볼 때면 내가 쉿 쉿 하며  손가락으로 알려 주기도 했다.

도망치다가 잡힐 듯이 가까워지면  고양이는 급한 나머지 나무 위로 올라가 밑에서 기다리는 개를 쳐다보며 꼼짝도 못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고양이에게 못 할 짓을 시켰고 미안하다.

아이러니하게 지금 남편과 나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한 마리는 집에서 임시 보호하고 있다.


긴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거나, 나뭇가지를 뜯기를 좋아했다
산책을 하며 웃고 있는 제이피


제이피가 산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오후 5시가 되면 어김없이 나갔는데, 마치 시계를 보는 것처럼 놀랍도록 정확한 시간에 나를 졸랐다. 그때 동물에게 배꼽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는 자주 동네를 누비며 다녔는데 뒷산에 데리고 가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든든했다.

그저 개가 걷고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하고 배가 불러서 이것이 바로 부모가 자식을 보면 느끼는 심정인가?

또 한 번 깨달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의 의미도 이해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느라 바빴고 남편 역시 일 때문에 항상 밤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제이피는 나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단짝이자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제이피 역시 엄마밖에 몰랐고, 나는 제이피가 미용을 하러 가는 한 시간도 초조해서 애견 샵 문 앞에서 기다렸다. 코카는 털을 깎지 않는데 한 여름에는 더우니까 한 번씩 미용을 시켰다.

나는 제이피를 함부로 대할까 걱정되어 오로지 털만 밀고 목욕도 시키지 말고 내가 데리러 올 때까지 케이지에 넣어두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감사하게도 미용사는 내가 올 때까지 제이피를 안고 기다려주었고 나는 매번 케이크를 사 가는 등 극성을 떨었다.


그렇게 제이피와 서로 집착 한 이유는 굉장히 큰 사건이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1997년 1월 5일 우리는 홍콩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겨울방학 중이라 제이피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떠났는데 지금은 최신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탈바꿈했지만 당시에는 작은 동물병원에 불과했다.

병원에 맡기고 온 우리는 즐겁게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제이피가 잘 있는지 궁금하여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개를 잃어버린 지 며칠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 소식을 듣고 홍콩 길거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2층 버스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하려고 하다가 모두 취소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남편은 다급하게 개를 찾는 전단지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당장 사진이 없어 구두 광고에 나온 귀가 길고 비슷하게 생긴 개 사진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제이피를 찾았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동물병원 의사 말에 의하면 출근하여 문을 열었는데 개가 후다닥 뛰쳐나가서 잡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동물병원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개를 넣어두는 케이지 밑으로 서랍처럼 배변을 보도록 되어 있었는데 제이피가 땅을 파듯이 발을 이용해서 그 밑으로 기어 나왔고 다음날 아침에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망쳐 나간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병원에 갈 때면 항상 차를 태워 다녔고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곳은 지금만큼 복잡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교차로가 있는 큰길이라 집에서만 살던 개가 길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웠다.


의사도 저녁마다 개를 찾으러 다녔는데 근처에 있고 쫒아 가면 도망을 쳐서 도저히 붙잡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과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우리 아파트와 비슷한 환경의 다른 아파트 주변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남편은 당장 사람을 보냈는데 그 사람은 남편의 사촌 동생으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제이피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시동생이 차를 타고 가다가 제이피를 발견하고 뒤따라갔으나 도저히 잡을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개도 지치고 포기했는지 이름을 부르자 곁에 다가오더라는 것이었다.

결국 붙잡아 잘 데리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잃어버린 지 3일 만에 개를 찾은 것이다.


9일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제이피를 데리러 갔다.

공항에 내리며 보니 길 한편에 하얀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부산 시내는 겨울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이다.

제이피는 3일 동안이나  굶고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치고 집을 찾아서 헤맸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무섭고 춥고 배가 고팠을까?

시동생이 일단 먹을 것을 주고 안정을 찾았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너무나 아팠고 기가 막혔다.

알 수 없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제이피를 만나자마자 한 시간 가량을 통곡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는 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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